정부의 무능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광풍 수준으로 번지며 농가가 초토화되고 있다. 살처분 가금류가 2000만 마리를 넘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리고 나서도 AI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자 뒤늦게 추가 대책을 발표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일각에선 극약 처방인 백신 사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방역 당국은 부작용을 우려하며 회의적인 입장이다.
H5N6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지난달 16일 전남과 충북에서 발견됐다. 이후 전국으로 확산돼 경기 강원 충남 부산 세종을 비롯해 8개 시·도, 27개 시·군에서 AI 확진 판정이 나왔다.
AI 발생 또는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된 가금류는 19일 2000만 마리를 돌파한 것으로 보인다. 한 달여 만에 기존 AI(H5N6형) 최대 피해 규모(2014년 1월∼2015년 11월 1937만 마리)를 뛰어넘은 것이다. 특히 경기도에서만 조만간 살처분 수가 1000만 마리를 넘어선다. 이는 도내 전체 사육 가금류의 20%에 육박하는 규모다. AI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던 광주·김포시의 방역망이 뚫렸고, 파주에서도 양성반응이 나왔다. 평택에서는 또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서북구 농가 2곳에서도 추가로 AI가 발생했다. 이 농장에서 기르고 있는 닭을 모두 살처분할 경우 천안시는 전체 농가에서 사육되고 있는 산란계 267만 마리 가운데 86.7%에 해당하는 232만 마리를 살처분하게 된다.
방역단계를 심각으로 올린 이후인 지난 주말에도 AI 의심신고는 계속 이어졌다. 주말에만 확진농가가 11곳 늘었고, 8곳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경기 안성천의 야생조류 분변에서 검출된 AI 바이러스는 다른 형태의 고병원성으로 확인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3일 경기도 안성천에서 채취된 야생조류의 분변 시료를 검사한 결과 H5N8형 고병원성 AI로 최종 확진됐다고 이날 밝혔다. 현재 맹위를 떨치고 있는 바이러스는 H5N6형이다. 국내에서 두 가지 이상의 AI 유형이 동시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H5N6형은 병원성이 강하고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만 2014∼2015년 창궐했던 H5N8형의 경우 잠복기가 길어 발견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방역 당국은 안성천에서 검출된 H5N8형이 잠복했다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철새를 통해 새로 유입된 바이러스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준원 농식품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H5N6형과 H5N8형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 예찰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조기에 관리를 잘한다면 과거처럼 오래 끌지는 않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H5N6형의 전국 확산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상황에서 H5N8형까지 동시에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내부적으로 AI 백신 접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차관은 “백신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다”면서 “(접종 중 인체 감염 우려도 있어) 백신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AI 후속조치 및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 방식만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백신 접종을 병행하게 되면 AI 상시발생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백신 접종은 감기처럼 AI를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바이러스가 상시 발생해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AI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려면 최종 살처분 후 3개월간 AI 추가 발생이 없고 바이러스가 순환한 증거도 없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를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AI가 유행할 때마다 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뒤 매번 어렵게 회복하기를 반복했다. 과거 AI 청정국 지위가 박탈됐을 당시 계란·닭·오리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전면 보류됐던 전례가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가금류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또 중국 베트남 등에서는 가금류에 AI 백신을 접종하고 있지만 동시에 인체 감염 및 사망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AI가 백신에 대항해 변형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사람으로 감염이 가능한 형태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이슈분석] 살처분 2000만 마리 넘었는데… AI 대책 ‘갈팡질팡’
입력 2016-12-20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