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의 탄핵 답변 ‘노무현, 기각 전략’ 따라하기

입력 2016-12-20 04:03

“탄핵소추 사유는 사실이 아니고, 증거가 없고, 절차도 흠결이 있다.”

탄핵소추의 절차적 문제부터 짚는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답변은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 재판에서 사용했던 전략과 닮았다. 대통령 방어권이 결여됐다고 주장한 점, 측근 비리엔 대통령의 관여가 없었다고 강변한 점 등이 특히 유사하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 측은 이에 더해 각종 법조항을 들어 탄핵심판 과정들을 지적하며 ‘지연 전략’을 쓴다는 평가도 받는다. 헌재는 신중하면서도 신속함을 잃지 않겠다는 태도다.

2004년 기출문제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헌재에 낸 답변서에서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탄핵소추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 측은 소추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 절차라도 선행됐어야 한다고도 밝혔다.

이는 2004년 노 대통령 측이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표결권, 질의 및 토론권이 침해됐다”고 풀어낸 답변서 논리와 같다. 피청구인이 졸속 의결을 주장한 결과 당시 헌재는 절차의 적법성부터 판단해야 했다. 물론 당시 탄핵 소추위원들은 “탄핵은 하늘의 뜻” “우국충정의 결단”이라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번에도 소추위원 측은 탄핵소추의결서를 헌재에 내며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측근 비리에 대해 무죄추정, 대통령의 무관함을 주장한 점도 닮은꼴이다. 박 대통령 측은 숫제 탄핵소추 사유를 뒷받침할 아무런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도 측근들의 정치자금 수수 비리에 대해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지도 않았다”고 무죄추정을 주장했다. 다만 당시 소추위원 측은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유죄 내지 유책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맞섰었다.

“지연전략? 갈길 가겠다”

헌재에 여러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박 대통령 측은 ‘지연전략’ 관측도 낳고 있다. 이날은 “국회 소추위원단이 답변서를 공개한 것은 형사소송법 제47조 위반”이라며 헌재의 제지를 원한다는 소송지휘요청서를 접수했다. 지난 16일에는 최순실(60·구속 기소)씨 등이 형사재판을 받는다는 이유로 헌재법 제51조를 내세워 “재판부가 탄핵심판 절차를 멈출 수 있다”는 의견까지 피력했다. 역시 헌재법을 들어 수사·재판 중인 사건기록을 헌재가 열람할 수 없다는 이의도 제기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큰 쟁점으로 비화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우선 박 대통령 본인이 재판에 넘겨진 게 아니기 때문에 탄핵심판을 멈출 수 없다는 게 헌법학계의 우세한 해석이다. 헌재 재판관들이 주말 사이 박 대통령 측 답변서를 꼼꼼히 검토했지만 19일 열린 재판관회의에서 심판 중단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달리 논의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기록 제출 이의신청 부분에서도 박 대통령 측의 뜻이 수용되리라는 관측은 높지 않다.

헌재가 즉각적인 결정들로 ‘지연전략’에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도 크다. 다만 이에 헌재 관계자는 “재판 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된다”며 “2인3각 경기를 할 때 마음이 앞서면 넘어진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르면 이번 주 준비절차기일을 열고 효율적 심판을 위해 양측 주장·증거를 정리한다. 소추위원 측은 이날 준비절차기일에 대한 의견서에서 “재판부의 결정하는 바에 따르겠다”고, 박 대통령 측은 “특별한 의견이 없고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진실을 밝혀 달라”고 각각 밝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