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문학·출판 결산] 한강, 한국문학 부활… 문단, 성폭력으로 ‘얼룩’

입력 2016-12-21 00:00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지난 5월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침체된 한국문학 시장의 중흥을 이끌었다. 오른쪽 사진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이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명예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는 장면. 뉴시스·국민일보DB

한강 맨부커상이 이끈 문학의 부활

지난해 ‘신경숙 표절 사태’로 침체됐던 문학시장의 중흥을 이끈 주역은 한강(46)이다. 지난 5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이후 한국 문학에 대한 독자의 신뢰가 살아났다.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수상 전 9년여 동안 6만부에 그쳤던 판매량은 연말까지 누적 판매 66만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통했다. 비슷한 시기 정유정 조정래 등 베스트셀러 제조기들이 신간을 내며 시너지를 냈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이 18만부 팔리고,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는 40만부가 나갔다. 은희경 김별아 김중혁 김탁환 김숨 장강명 등 인기 작가들의 장단편도 쏟아지며 불을 지폈다.

시는 소설보다 먼저 살아났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SNS 문화가 확산하며 사진과 영상 이미지에 곁들이기 편한 짧은 콘텐츠로서 시가 각광받고 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김소월의 ‘진달래꽃’ 백석의 ‘사슴’ 등 초판본 시리즈의 인기가 시심을 자극하면서 인기 작가의 시집이 중쇄를 거듭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논란

10월엔 미국 팝 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화제였다. 대중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노래는 ‘귀로 듣는 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랫말이 갖는 문학성, 반전·평화의 메시지가 인류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밥 딜런의 수상에 가요계는 대체로 환영했지만 문학계의 감정은 다소 복잡했다.

문학의 경계를 확장시켰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가하면 “훌륭한 작가가 필립 로스 등 미국에만도 넘친다. 문학이라는 큰 배가 타이태닉호가 돼가는 것 같다”(김화영 고려대불문과 명예교수)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밥 딜런이 시집 한 권 낸 적이 없는데도 시인으로 상을 받은 건 책이라는 권위에 대한 조롱이며, 장기적으로 출판 시장의 침체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문단 성폭력 고발 사태

10월 중순 페미니즘 웹툰작가의 ‘성폭행 방조 혐의’가 폭로됐다. 이를 계기로 트위터 등 SNS에서 여혐행태 고발이 봇물처럼 터지며 문단을 뒤흔들었다. ‘#문단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고발 행보에 인기 작가 박범신을 비롯해 박진성·이준규·배용제 시인 등이 줄줄이 도마에 올랐다. 문제가 된 남성들은 대부분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일부는 절필 선언을 하기도 했다. 해당 시인들의 시집을 낸 출판사에서는 시집 출간을 정지하는 등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의 문제제기가 마녀사냥이 될 수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법 제도 등 정식 통로를 통해서는 답을 얻기가 쉽지 않은 구조에서 온라인은 출구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문화계 성폭력 고발 사태는 미술계도 강타해 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등이 퇴출됐다.

페미니즘 등 외부 이슈에 반응

올해는 출판계 밖에서 발생한 사회·정치적 이슈들이 출판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상반기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연말까지 페미니즘 도서 출간과 판매가 급증했다. 또 이세돌이 알파고의 대결에서 패배한 이후 인공지능, 로봇,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의 미래를 예측한 책들이 줄줄이 나왔다. 미국 대선과 관련해 트럼프와 클린턴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이기면서 클린턴 관련 책을 준비한 출판사는 울상을 지어야 했다.

국정교과서 논란 때문에 한국사 관련 책들도 주목받았다. 특히 한국사 강사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주간 베스트셀러 집계 사상 역사 분야 도서로는 처음으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미 출간됐던 도서들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놨다. ‘대통령의 글쓰기’ ‘다시, 헌법’ ‘나의 한국 현대사’ 등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장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