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행 없으면 이 마을 노인들 하루도 못 살아요”

입력 2016-12-19 21:08 수정 2016-12-22 16:33
서울 노원구 중계동 달동네인 백사마을에 사는 이남순씨가 18일 연탄보일러에서 연탄을 바꾸고 있다. 기초수급자로 사는 이씨는 "연탄은행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고 말했다.
서울연탄은행 연탄교회에서 성경공부를 마친 주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연탄은행 제공
“연탄은행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예요.”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으로부터 13년째 무상으로 연탄을 지원받고 있는 이남순(65·여)씨의 첫마디였다. 이씨의 집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에 있다. 이곳은 일명 ‘백사마을’로 불리는 달동네.

18일 찾아간 그의 집은 인근 불암산 자락 옆에 있었다. 산에서 부는 바람이 아랫동네보다 더 매서웠다.

이씨의 집을 가려면 중계동 버스 종점부터 연신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꼬불꼬불 골목길을 몇 차례나 돌고 돌았다. 주변 집들은 빈 곳이 많았다. 폐가로 변한 주택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15분이 걸려서야 도착했다. 그의 집 방은 의외로 훈훈했다. 이씨는 방바닥에 깔아놓았던 베이지색 이불을 걷더니 “이리 앉으라”고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난청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이씨는 다시 큰 목소리를 내며 “여기 앉아 봐요” 했다.

아랫목이었다. 노란색 장판 위를 손으로 만졌다. 온기를 넘어 뜨거움이 느껴졌다. 이씨는 기자가 온다는 말을 듣고 아침부터 연탄보일러 공기통을 열어놨다고 했다. 연탄보일러는 안방 벽 너머 외부에 설치돼 있었다. 덕분에 연탄가스 걱정은 없다고 했다. 한쪽에는 연탄난로도 설치돼 있었다. 연탄보일러만으로는 추워서라고 했다.

대화를 나누던 이씨는 “연탄 갈 때가 됐다”며 방문을 열었다. 원통형 보일러는 작고 아담했다. 보일러 옆에는 20장 정도의 연탄이 쌓여있었다. “엊그제 연탄은행 사람들이 150장을 갖다 줬다”고 했다. 보일러 상단 뚜껑을 여니 열이 후끈 올라왔다. 연탄은 어느새 하얀 재로 변해 있었고 빨간 불은 마지막 힘을 다해 피어올랐다. 이씨는 집게로 연탄을 들어 올리면서 “하루에 5장 정도 땐다”고 했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이씨는 혼자 산다. 동네의 70∼80대 노인들에 비해서는 젊었지만 아픈 곳이 많았다. 그는 “굶는 것은 참지만 추운 건 못 참는다. 연탄은행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느냐”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그가 백사마을로 이주한 것은 2003년 12월이었다. 서울 신촌의 한 교회에서 도움 받으며 살아가다 이사했다. 기초수급자인 그는 수입이 전혀 없었다. 지원금으로만 살아가는 그에게 겨울은 몸과 마음을 위협하는 계절이었다. 빠듯한 생활비에 연탄까지 구입하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렇게 걱정하던 차에 연탄은행이 생겼다 한다.

“처음엔 연탄은행 사무실 앞에 연탄이 있었는데 가져다 쓰라고 했어요. 그 다음엔 집까지 날라주니 너무 고맙더라고요. 어디 연탄뿐인가요. 쌀과 라면, 반찬까지 줄 때도 있어요. 생명의 은인이지요. 이 마을 사는 노인들은 연탄은행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요.”

백사마을은 재개발 지역이라 언제 헐릴지 모른다. 그때까지라도 연탄은행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분들이나 기업들이 연탄은행을 뒷받침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따뜻한 겨울을 지냈으면 좋겠네요. 이 동네 사는 사람들, 속사정은 깊이 몰라도 다들 어려워요.”

기독교인인 이씨는 이 모든 혜택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이 연탄은행을 세워 돕는다고 믿었다. 그의 방 안에 걸린 성구(聖句)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글·사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