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으면 ‘가시방석’ 떠나면 ‘가시밭길’… 유승민, 선택 기로에

입력 2016-12-19 18:13 수정 2016-12-20 00:52

새누리당 비주류가 ‘유승민 전권 비상대책위원장’ 카드를 당대표 권한대행인 정우택 원내대표에게 추천했다. 사실상 최후통첩이다. 비주류는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탈당키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친박(친박근혜)계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새누리당의 분당(分黨)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승민 의원은 1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대표 권한대행의 공식적 답변을 지켜보고, 그 이후는 그때 가서 고민해 보겠다”며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친박계의 ‘유승민 불가’ 의사는 유 의원에게 여러 경로로 전해졌다. 하지만 유 의원은 정 원내대표의 공식 입장 발표 후 탈당 여부를 밝힐 계획이다.

유 의원은 탈당 가능성에 대해 “아직 결정한 것은 없다”며 “많은 의원들과 그런 가능성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라고만 했다. 이어 “당의 진정한 개혁을 진행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진 비대위원장이라면 독배를 마시겠다는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무성 전 대표와 정병국 강석호 권성동 김학용 의원 등 비주류 의원 10여명은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유승민 전권 비대위원장 카드를 추천키로 의견을 모았다. 유 의원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모임에선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이 손을 잡지 않으면 탈당 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권성동 의원은 “‘유승민 비대위원장’ 제안은 비주류의 최후통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친박 중진 의원들의 오찬 회동에선 “유승민 전권 비대위원장은 불가하다”고 입장이 정리됐다. 참석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내년 4월 자진사퇴 방안을 당론으로 정했던 상황에서도 탄핵에 앞장섰던 유 의원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전했다. 한 의원은 “공동 비대위원장이나 계파 간 합의를 거친 비대위원 인선 방안까지는 논의할 수 있지만 유승민 전권 비대위원장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정 원내대표 역시 오후 한 방송에 출연해 “유 의원이 비대위원장이 되면 당이 풍비박산날 수 있다”며 “이걸 받으면 주류 쪽은 ‘정치의 목을 내놓으라는 것’이라고 반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그는 “풍비박산과 분당 사이에 비교형량을 해보고 의견수렴을 해봐야 한다. 목을 치겠다는데 스스로 목을 내미는 사람은 대인(大人) 중에 대인”이라고도 했다.

유 의원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탈당과 잔류, 두 가지 선택지만 남은 상황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곧바로 탈당하는 카드는 명분에서 밀릴 수 있다. 대구·경북(TK) 원로들이 유 의원 탈당을 만류하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기에는 답이 없는 상태다. 유 의원에게 탈당을 재촉하는 비주류 의원들은 “더 싸워봐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기 대선이 유력한데 주저할 시간이 없다는 취지다.

탈당파에선 합리적 보수세력을 규합,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신(新)보수의 경쟁 무대를 만든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수도권 한 의원은 “대선 일정이 급박하게 다가올 텐데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탈당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정 원내대표는 원내수석부대표에 친박계 재선인 김선동 의원을, 원내대변인에 비주류 정용기 의원을 임명하는 등 원내 지도부 인선을 발표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