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새벽 운동을 나선 김모(67·여)씨는 서울 강남구 차병원사거리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오전 5시36분쯤 우회전해 돌진해온 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씨를 범퍼로 들이받았다. 차는 잠시 속도를 줄이는 듯하더니 그대로 달아났다. 김씨는 이 사고로 뇌진탕을 입고 팔과 다리를 다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는 뺑소니 차가 택시라는 목격자의 증언만이 유일한 단서였다. 경찰은 택시가 달아난 방향을 따라 CCTV 120대를 분석했다. 어두운 새벽이어서 차종과 차량 번호 네 자리 가운데 두 자리만 가까스로 식별했다. 경찰 내부 전산망에서 해당 번호가 포함된 택시를 조회했다. 용의자는 택시기사 권모(60)씨로 좁혀졌다.
경찰에 불려온 권씨는 3차례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사고 시간에 사거리를 지나가긴 했지만 사고를 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증거는 차량 안에 있었다. 교통안전법상 택시나 버스, 화물차는 자동운행기록장치(태코미터)를 부착해야 한다. 경찰은 이 장치에 기록된 운행 기록을 분석해 사고가 난 날 권씨의 동선을 확인했다.
기록은 권씨의 진술과 달랐다. 권씨는 사고 시간 뒤 다른 손님을 태우고 강북 쪽으로 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일 권씨의 차는 사고 이후 강남 지역을 맴돌다가 다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음이 운행기록으로 밝혀졌다. 결국 권씨는 “내가 사고를 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혐의로 권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 번호가 잘 보이지 않는 밤이나 새벽 시간에 일어난 뺑소니도 끝까지 추적해 잡겠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CCTV·‘태코미터’ 분석… “뺑소니, 딱 걸렸어”
입력 2016-12-20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