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쇼트트랙 ‘크리스티 주의보’

입력 2016-12-20 04:24
엘리스 크리스티(왼쪽)가 17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1000m 1차 레이스 결승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의 최민정을 앞지른 채 역주하고 있다. 뉴시스

‘악플을 딛고 세계를 호령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전 종목 석권을 노리고 있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대표팀에 ‘엘리스 크리스티(26·영국) 주의보’가 내려졌다.

크리스티는 18일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막을 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수확했다. 이 대회에서 개인종목 여자 2관왕은 크리스티가 유일하다.

크리스티는 월드컵 1∼3차 대회까지 500m에서 세 차례 우승하며 단거리에 강한 모습을 보여 왔다. 올 시즌 월드컵 여자 500m 랭킹 1위다. 단거리 강자 크리스티는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주종목인 500m 출전을 아예 포기하고 1000m 1, 2차 레이스에 나섰다. 그럼에도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대들보 최민정(18·서현고)과 심석희(19·한국체대)를 차례로 무너뜨려 놀라움을 안겼다.

최민정은 지난 17일 크리스티에게 지는 바람에 올 시즌 처음으로 월드컵 1000m 금메달을 놓쳤다. 크리스티는 월드컵 여자 1000m 랭킹도 2위로 끌어올리며 1위 최민정을 바짝 추격했다.

크리스티는 과거 한국과의 악연으로 화제가 됐던 선수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500m 결승 레이스 중 무리하게 끼어들다가 선두 박승희를 건드리면서 실격패했다. 당시 금메달 유력 후보였던 박승희는 크리스티와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의 충돌 여파로 함께 넘어져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크리스티는 경기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과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한국팬들의 무차별적인 악플 공격에 충격을 받아 SNS 계정을 폐쇄하고 심리치료까지 받았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저조한 성적(500m·11위, 1000m·19위, 1500m·20위)을 남기는 등 아직까지 올림픽 메달이 없던 크리스티는 절치부심하면서 이제 쇼트트랙의 절대강자 한국을 위협하는 선수로 거듭났다.

크리스티는 19일 영국 지역지 노팅엄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출신 이승재 영국 쇼트트랙 대표팀 기술코치의 도움이 컸다. 덕분에 더 긴 거리(1000m)에서 강호 한국 여자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크리스티의 꿈은 세 번째 출전이자 마지막이 될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평소 남자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교롭게도 남자선수들과 합동 훈련을 한 데에는 소치 대회 당시 한국팬들의 악플 세례도 한 요인이었다.

크리스티는 “올림픽 이후 (악플·저조한 성적 등으로 인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며 “멘탈에서도 강한 스케이터가 돼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남자와 경쟁하면 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지는 법을 통해 내 약한 멘탈을 단련시키고 있다. 또 남자들과 경쟁할수록 내 목표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크리스티의 등장에서 보듯이 한국 쇼트트랙이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남녀 모두 세계 수준이 상향되면서 압도적 강호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번 대회 단 2개의 메달에 그친 남자팀은 더 심각하다. 이정수가 1500m 금메달, 한승수가 500m 동메달을 땄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베테랑 이정수 외에 새로운 에이스가 보이지 않는 점도 해결해야할 과제로 떠올랐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