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파고 높아진 글로벌 무역… 4개의 돛이 생존 가른다

입력 2016-12-20 04:02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관광지 마리나베이 모습(사진 위). 부산항 감만부두 전경(사진 아래).



세계경제포럼 ‘세계무역가능 보고서’에 담긴 미래 전략

세계경제포럼(WEF) 이사회 멤버인 리더츠 사만스는 최근 ‘세계무역가능 보고서(The Global Enabling Trade Report)’를 통해 올해 무역 상황을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무역의 불확실성이 확산된 해”라고 평가했다.

사만스에 따르면 올 초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전 세계 지도자들은 무역시장의 긍정적 무드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은 무역 협상에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 태평양과 대서양 간 무역 투자 파트너십도 공고히 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결정한 영국과 WTO 회원국 간 분열,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은 이 같은 진전을 멈추게 했다. 이처럼 무역시장이 예측 불가능하게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역가능 보고서는 국가들이 무역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WEF가 긍정적인 무역시장을 구축하고 상품의 흐름을 원활히 하자는 목적에서 2007년부터 2년에 한 번씩 발간하고 있다. 전 세계 136개국의 무역 및 투자여건을 조사한 각종 통계자료와 각국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오피니언 리더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된다. 특히 무역가능지수(ETI)는 각국 무역여건의 성적표로 여겨진다. ETI는 무역하기 좋은 나라의 조건을 크게 4개로 나눈 뒤 7개 세부 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있다.

첫 번째 시장 접근성은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으로 구분했다. 국내시장의 접근성은 관세 장벽이라든가 수입관세 면제 상품, 특정 관세를 부여하는 품목의 수, 관세 체제의 복잡성 등 6가지 지표로 판단한다. 외국시장 접근은 양자 또는 다자간 무역 협상을 통해 수출 대상 국가 간 관세 장벽을 개선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두 번째 조건은 국경 관리 여부다. 쉽게 말해 세관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판단하고 있다. 절차의 효율성이나 세관 기관의 투명성, 문서 작업 등 13개 지표를 살펴본다.

무역 인프라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도로, 항공, 철도 등 운송 수단의 인프라와 서비스는 물론 정보통신기술(ICT)의 가용성, 품질을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도 따져본다. 외국인 투자 등 기업 개방성, 공공 기관의 질적 수준, 정부의 재산권 보호 수준 등이 모두 포함된다.

올해는 싱가포르가 2014년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무역하기 좋은 나라로 꼽혔다. WEF는 싱가포르부터 네덜란드, 홍콩, 룩셈부르크까지 소위 소규모 개방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들이 나란히 1∼4위에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조사 대상 국가들의 평균 ETI 점수는 4.4로 2014년(4.3)보다 증가했다.

전체 성적에서 1위에 오른 싱가포르는 시장의 개방성이 강점이다. 수입 제품의 99.7%가 면세 형태로 유입된다. 세관 행정도 효율적이고 투명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 세관은 원활한 무역을 위해 30년 전 최초의 단일 시스템을 구현했다.

EU 국가들은 지역 통합의 이점을 보여줬다. 10위권 국가 중 8개 나라가 EU 국가였다.

그중 2위에 오른 네덜란드는 항만 인프라를 활용한 세계적인 운송 허브를 앞세워 무역 점수를 끌어올렸다. 홍콩의 강점은 금융 서비스였다. 외국기업들의 투자가 용이하도록 금융시장을 개방한 데다 상품 역시 세금 없이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세관 행정도 전자문서를 통해 실시간 처리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높아지는 수출장벽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룩셈부르크는 외국인 투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높은 국가 중 하나였다. 아쉽게도 시장 접근성과 세관 행정의 불편함 때문에 홍콩에 3위 자리를 내줬다.

한국은 올해 5.04점으로 2014년 34위(4.86점)에서 7계단 올랐다. 한국이 무역시장으로 갖고 있는 강점은 항구 기반시설과의 연결성, ICT 인프라였다. 단점은 시장 접근성이었다. 한국은 무역 측면에서 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게 매력이지만 일부 상품은 평균 60%에 달하는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세계 시장 변화에 따라 무역시장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과 장관급 ‘제6차 한·EU 무역위원회’를 개최하고 한·EU FTA와 관련한 통상현안에 대해 협의했다.

한국은 2011년 7월 한·EU FTA 발효 이후 대(對)EU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양측 간 무역의 균형적 확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통상현안 해소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한국은 대형 TV 관련 기술규제와 어묵, 삼계탕 관련 비관세 장벽 해소를 강하게 제기하고 양측은 해당 분과별 이행위원회에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흔들리는 수출… 한국무역 年 1조 달성 2연속 실패

한국은 2011년 12월 5일 세계에서 9번째로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하는 국가가 됐다. 이후 3년 연속 1조 달러를 돌파했다. 1조 달러 달성 시점도 빨라졌다. 2011년엔 12월 5일, 2012년엔 12월 10일, 2013년엔 12월 6일이던 것이 2014년엔 11월 28일 오후 1시7분으로 앞당겨졌다. 그러나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도 무역 1조 달러 달성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무역이란 수출과 수입을 합한 것이다. 1조 달러를 처음 달성했던 2011년엔 수출 5565억 달러, 수입 5244억 달러로 무역액이 총 1조809억 달러였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 전선은 지난해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한국의 수출 중 26%를 차지하는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수출은 급감했다. 최근엔 사드 배치로 인한 혐한류까지 퍼지면서 중국 수출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러시아 수출도 좋지는 않다. 지난해 60% 넘게 줄면서 사실상 붕괴 수준이었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은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점이다. 유가 하락으로 그동안 자동차, 휴대전화 등을 수입하지 않았던 중동국가들이 유가가 오르면 지갑을 열 가능성이 높다. 유가 상승에 기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출 금액의 감소에 비해 물량 감소는 미미했다는 점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유가가 하락하면서 제품의 생산가격까지 하락했다. 가령 자동차 1대를 팔더라도 이전과 동일한 값을 받을 수 없게 됐고 수출 금액은 줄었다”면서 “물량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유가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수출 금액도 회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역 1조 달러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원자재가 없는 한국의 특성상 벌어들인 만큼 원자재를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무역규모 1조 달러로 수지타산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