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키우는 주부 박모(30)씨는 지난주 열이 나 병원을 찾았다. A형(H3N2) 독감에 결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격리가 원칙이지만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하소연해 A형독감 치료제(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간 박씨는 깜짝 놀랐다. 약값이 3만5000원이었다. 그는 “독감 검사비까지 5만원 넘게 썼다”고 말했다.
역시 A형독감에 걸렸던 대학생 이모(21)씨는 타미플루가 너무 비싸 일반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대신 일주일 넘게 열과 기침으로 고생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는데 약값에 3만원이나 쓰기가 아까웠다”며 “몸도 아픈데 약값마저 비싸서 원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신종플루(H1N1·A형 독감의 일종)가 악명을 떨쳤던 2009년 이후 A형독감이 겨울마다 맹위를 떨친 지 7년째. 거의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비싼 약값으로 환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5일분(1일 2회 기준)에 2만8060원인 약값은 100% 환자 부담이다. 일반인에겐 타미플루 처방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험군 환자인 1∼9세 이하의 소아와 65세 이상 고령층, 임신부에게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A형독감은 노인이나 어린이뿐만 아니라 청소년이나 성인도 쉽게 걸리는 질병이다. 일반 독감보다 전염성이 강해 학교 등 집단생활을 하는 공간에서는 빠르게 퍼진다. 올해도 A형독감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대규모 전염을 막거나 빠른 치료를 위해 고위험군이 아닌 A형독감 환자에게도 타미플루를 처방하는 의사들이 늘었다. 타미플루 제조사인 글로벌 제약업체 로슈는 국내에서 연간 300억원어치를 팔고 있다.
타미플루의 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의 기준은 2002년 8월 정해진 것으로 2009년 신종플루 사태라는 국가적인 ‘홍역’을 치르면서도 14년 넘도록 건강보험 적용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폐렴 등 합병증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 환자가 독감에 걸릴 경우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청소년이나 성인은 자연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고 건강보험 적용대상에선 제외했다. 이 기준은 여러 차례 수정됐지만 고위험군 환자의 범위가 약간 늘어나는 정도에 그쳤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의 급여 기준이 의료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재검토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전했다. 급여기준을 바꾸려고 해도 전문가 자문 회의, 늘어나는 재정 부담 논의 등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다만 내년에 다수의 제약업체에서 타미플루 복제약(제네릭) 출시가 예정돼 있어 소비자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 타미플루 성분에 대한 로슈사의 원천특허는 지난 2월 만료됐다. 한미약품에서 복제약인 한미플루를 출시해 타미플루보다 3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내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쯤에는 다른 제약회사들도 복제약을 출시할 예정이어서 가격이 좀 더 내려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기획] A형독감 환자, 비싼 약값에 더 아프다
입력 2016-12-19 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