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웰다잉법, 첫 단추에 성패 달려

입력 2016-12-18 19:10

지난 4월 말 기획 시리즈 ‘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취재차 대만을 찾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곳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대만인들은 말기 암이나 치매 등 질병으로 임종에 가까워지면 스스럼없이 무의미한 생명연장 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2000년 제정된 ‘자연사법’에 따라 19세를 넘으면 누구나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의미의 ‘DNR(Do Not Resuscitate)’ 의사를 건강보험 IC카드에 표시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관련 법·제도 마련은 물론 ‘존엄한 죽음’에 대한 대국민 교육과 홍보를 지속한 덕분에 ‘선종(善終)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됐다. 특히 독립 비영리기관인 ‘대만호스피스재단’은 이런 웰다잉 인프라 조성과 확산의 컨트롤타워로 큰 역할을 했다. 대만의 말기 암 환자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률은 59%(2014년 기준)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이용률(15%)보다 4배 가까이 높다. 대만은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전 세계 80개국 대상으로 진행한 ‘죽음의 질 지수’ 평가에서 아시아 1위, 세계 6위에 올랐다.

우리나라도 대만과 비슷한 웰다잉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법)이 올 초 제정돼 조만간 시행을 앞두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 사항은 내년 8월부터,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관련 내용은 6개월 더 준비 기간을 가진 뒤 2018년 2월 본격 시행된다.

요즘 이 웰다잉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설치할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을 두고 말이 많다. 이 기관은 사전연명의료계획서 등에 대한 DB구축 및 등록기관 지도·감독, 연명의료 중단 이행 여부 조사 및 연구, 대국민 홍보와 교육 상담 등을 총괄하는 한마디로 컨트롤타워가 될 터다.

복지부는 당초 질병관리본부에 두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철회했다. 그러자 서울대병원과 국립암센터, 국립중앙의료원 등 몇몇 의료기관이 유치 의향을 밝혔다. 그런데 올해 6월 취임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유치를 강력 희망하면서 복지부 의중이 그쪽으로 기울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같은 서울대병원 출신인 정진엽 복지부 장관이 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복지부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며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서 곰곰이 따져봐야 할 문제가 국내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관리의 컨트롤타워를 의료기관에 맡기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하는 것이다. 임종 과정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은 모든 국민의 인권과 인간 존엄성에 관한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연명의료 결정이나 이행 여부 등을 조사할 기관과 조사받는 기관이 모두 의료기관이 되면 이해관계 당사자끼리 업무가 돼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의사 중심 운영체계를 갖고 있는 의료기관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을 맡으면 책임자가 모두 의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독립성 확보도 쉽지 않다. 의료계에서 모든 업무가 이뤄지면 환자나 보호자, 종교·윤리계, 일반인 등 다양한 관련자의 참여가 어려워 객관성을 담보하기도 어렵다. 웰다잉법이 자칫 인간 생명을 인간의 뜻에 따라 중지하는 것을 합법화해 주는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연간 28만명이 죽음을 맞이하고 이 중 3만여명이 연명의료 관련 처치를 받다가 숨진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독립성과 공정성, 객관성, 전문성을 온전하게 갖춘 연명의료 컨트롤타워의 역할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웰다잉법의 성패는 첫 단추를 어떻게 잘 끼우느냐에 달려 있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