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 전망으로 대형 자본이 신흥국과 채권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머니 무브’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들 자본의 목적지는 달러 강세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사상 최고의 호황을 맞고 있는 미국 증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달 9일부터 이달 9일까지 한 달간 국내 신흥국 주식펀드와 신흥국 채권펀드는 각각 -2.56%와 -3.29% 수익률을 보였다고 16일 밝혔다. 반면 북미 주식펀드는 4.93%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북미 주식펀드에는 257억원이 새로 유입됐고, 신흥국 주식펀드와 신흥국 채권펀드에선 반대로 각각 120억원, 28억원이 빠져나갔다.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시장조사기관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는 7일 기준으로 지난 4주간 북미 주식에는 420억1500만 달러(약 50조원)가 유입된 반면 신흥국 주식펀드와 신흥국 채권펀드에선 총 210억 달러가 순유출됐다고 전했다. 원화로 하면 약 25조원 규모의 자금 유출이다.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지수는 전날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점도표상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 전망으로 1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 증시도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업종이 강세 흐름을 보이며 전일 대비 0.3% 포인트 안팎으로 상승 마감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사상 최초의 2만선 돌파를 앞두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은 최근 한 달간 외국인 매수세가 2조2000억원에 이르는 등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흐름이 바뀔지 주목된다. 2013년 12월 미 연준의 테이퍼링(돈줄 죄기) 착수 당시엔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30거래일 동안 2조7000억원을 팔고 빠져나갔다. 지난해 미 연준이 9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을 때도 3조3000억원의 순유출이 있었다.
채권시장은 국채 10년물 금리의 경우 이미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역전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1월 100조원을 넘던 외국인 채권 투자 잔액은 올해 11월 말 기준으로 89조원까지 축소됐다. 내년 연준이 3회 인상을 추가해 기준금리마저 한국과 차이가 없게 되면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신흥국 자본유출 우려의 대표 사례는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다. 트럼프 당선으로 페소화 약세가 지속돼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린 멕시코 중앙은행은 15일(현지시간) 12월 금리를 또다시 0.50% 포인트 인상했다. 시장 예상치의 배에 달하는 인상폭이다. 달러 강세로 자금유출이 일어나면 페소화 약세가 지속돼 물가상승을 불러오게 되므로 성장동력 약화를 감수하고라도 조기 진화에 나선 것이다. 반면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준금리를 동결해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자본유출 규모와 폭을 예측하긴 쉽지 않지만 대비는 해야 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전날 간담회에서 “혹시라도 선진국 금리 진출 속도가 빠르다면 신흥국 금융 불안도 빨라질 수밖에 없어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만기 1년 미만 외채와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예상액 등을 추산하면 현재 보유액 3720억 달러보다 753억 달러 부족하다”며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소요외환보유액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美, 금리인상… 한국경제 후폭풍 얼마나] 신흥국·채권시장 대형자본, 美 증시로 유출 가속
입력 2016-12-16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