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이 경기도에 작업실을 갖고 있거나 거주하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시각예술창작지원사업 ‘생생화화’가 올해 4회를 맞는다. 재단은 올해부터 청년 작가 부문과 별도로 기성작가 부문을 신설해 19인을 선정했다. 경기도미술관과 협력해 이들 40대부터 60대까지 중장년 작가의 신작들을 모아 ‘산책자의 시선’전을 열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의 도시를 배회하고 관찰하던 일군의 도시 탐색자들을 지칭했던 ‘산책자’ 개념을 지금 한국에 투영한 것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를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시대적 징후를 드러내는 작품을 해왔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개막식 날 찾은 전시장에서 눈길을 끈 것은 정재철의 작품 ‘블루오션’이다. 바다 쓰레기라는 전 지구적 문제점을 설치, 회화 등을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가 전국 해안을 돌며 수습한 쓰레기에는 북한과 중국산까지 있다. 지도처럼 붙여놓은 ‘해류도’는 바다 쓰레기의 길이기도 하다. 간척지 풍경을 몽타주 같은 사진 기법으로 낯설게 드러내는 박형근, 어렵사리 촬영한 전쟁무기의 스펙터클을 해체한 방병상 등 ‘기록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한 그룹을 이룬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21세기 버전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도 있다. 노인과 노숙자의 모습을 낡아서 못쓰게 된 기계와 병치시킨 박은태의 ‘늙은 기계’ 시리즈, 르네상스 시대 화가 보쉬의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이흥덕의 ‘지하철 퍼레이드 시리즈’, 세월호 팔찌와 전태일 운동화 등을 통해 부유하는 사회정치적 풍경을 비현실적으로 담아낸 박영균의 ‘2016년 보라 Ⅰ’ 등이 그렇다. 김보중 김지은 등은 난개발의 도시풍경을 독창적 기법으로 표현했다.
최은주 관장은 “경기문화재단이 제작비를 지원하고 경기도미술관이 전시 연출을 담당하는 새로운 협력모델”이라며 “특히 작품 제작 과정에 평론가들을 참여시켜 작업의 심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년 2월 5일까지.
안산=손영옥 선임기자
19세기 말 유럽의 도시 탐색자, 한국 현실에 투영
입력 2016-12-18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