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아니야?” 놀보가 마당놀이를 진행하러 무대에 나온 마당쇠에게 딴죽을 건다. 빗자루를 들고 온 마당쇠는 “저는 비든 실세인데요”라고 받아친다. 객석은 요즘 시국을 빗댄 ‘비선 실세’와 그 말장난인 ‘비(를)든 실세’에 웃음이 터진다.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내년 1월 2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첫 장면부터 끝날 때까지 작정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하고 있다. “혼이 병든 꼬라지를 보니 나가야 쓰것다” “이렇게 굶으려고 태어났나 자괴감이 든다” 등의 대사는 올해 최고의 유행어가 된 박 대통령의 발언을 비꼬고 있다. 여기에 놀보 처가 도망가며 신발 한짝이 벗겨지는 장면이나 놀보가 탄 박 속에서 선글라스를 머리에 걸친 여자와 함께 재단 직원들이 등장해 돈을 뜯어내는 장면은 최순실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외에도 문화융성, 늘품체조, 블랙리스트, 물대포, 촛불 등이 ‘놀보가 온다’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덕분에 관객들은 권력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하는 마당놀이를 보는 동안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요즘 시국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는 마당놀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원작 대사의 일부를 바꾸거나 새롭게 대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공연계에서 가장 먼저 최씨가 언급된 작품은 지난달 16∼27일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 극단 신세계의 연극 ‘파란 나라’다. 고등학생들이 집단주의에 휩쓸리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에는 “네 엄마가 최순실이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정유라의 특혜를 비꼰 것으로 9월 말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후 연습 중 추가됐다.
뮤지컬 ‘오! 캐롤’(내년 2월 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도 극중 쇼를 진행하는 남녀 주인공의 대사에 “말썽 피우는 강아지 순실이” “순실이 심심할테니 그네(근혜)도 태워 보내자” 등이 나온다. 제작진이 아예 회의를 열고 최근 현실을 반영해 풍자성 대사를 추가한 것이다.
연극 ‘우리의 여자들’(내년 2월 12일까지 수현재씨어터)은 안내상, 우현 등 출연배우들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검찰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등의 대사를 공연 중 애드리브로 했다가 아예 대사로 굳어지게 됐다.
이외에도 국립극단의 ‘실수연발’(28일까지 명동국립극장), 뮤지컬 ‘구텐버그’(내년 1월 2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등 적지 않은 작품이 앞다퉈 시국을 풍자한 대사로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시국 풍자가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달 24∼27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오페라 ‘맥베드’는 1막에서 레이디 맥베드가 살인한 뒤 얼굴을 가린 채 퇴장하는 모습을 구속된 최순실의 모습으로 그렸다. 2막의 가사 “이 땅은 산적들의 소굴이 돼 버렸다”는 자막에 “이게 나라냐! 도적들의 소굴이지”라고 바꿨다. 하지만 오페라 공연장 분위기가 엄숙하고 보수적인 탓에 관객들은 눈치를 채지 못해 웃지 않았다.
한편 지난 1∼4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뮤지컬 ‘금강, 1894’는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풍자가 전혀 없다. 하지만 민초들이 탐관오리의 폭정과 일본군에 저항하기 위해 들고 일어나는 모습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현재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연말 공연계 ‘朴·崔 게이트’ 풍자 봇물
입력 2016-12-19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