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훈의 컬처 토크] ‘라라랜드’, 꿈에 대한 아름다운 판타지

입력 2016-12-16 20:28

지난해 ‘위플래시’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다미엘 체젤레 감독의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가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으며 상영되고 있다.

가난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의 꿈과 사랑을 그려낸 이 영화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진부함의 극치이다. 하지만 미국의 연예매거진 ‘버라이어티’(Variety)는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창의적인 영화”라고 극찬한다.

이 창의성은 아마도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감을 사로잡는 독특한 촬영 기법과 화려한 색체와 조명,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의 향연이 관객들을 경이로운 판타지로 안내한다. 더욱이 이제 30세가 조금 넘은 젊은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시대적 배경이 오늘임에도 1940∼50년대의 고전적인 뮤지컬의 기법과 이제는 사라져가는 재즈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왜 낭만을 부정적인 것처럼 말해?” 주인공 세바스찬은 현실적이 되라는 누나의 잔소리에 이렇게 화답한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꿈을 꾸는 용기이다. 오늘날 수많은 노래와 자기개발 강연들이 꿈에 대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점점 더 꿈을 잃어 간다. 왜일까.

끊임없이 판매하는 막연한 희망은 곧 현실에서 절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절망한 이들을 상대로 다시 희망을 팔고 다시 절망하고, 이 악순환이 우리가 사는 시대의 민낯이다. 사실 그 희망은 참된 꿈이 아니라, 미디어가 주입하는 허영과 망상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한편에서는 “꿈 깨”라는 현실적 조언을 던지며 망상에서 벗어나 현실 감각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이래저래 요즘 우리는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꿈과 짓밟힌 꿈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살고 있다. 꿈꾸며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아는지 젊은이들은 더 이상 꿈을 믿지도 않는다.

성경은 비전이 ‘이미지’가 아니라 ‘디렉션’이라고 가르쳐 준다. 어떤 자리에 오르고 어떤 것들을 소유할지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추구하고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를 강조한다. 인생과 사회의 타락 밑바닥에는 소망의 타락이 깔려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소망과 함께 믿음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믿음을 통해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품는 소원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영화 ‘라라랜드’는 우리가 꿈을 이루는 것보다 꿈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해준다. 다음 주면 크리스마스다. 본디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로마의 전통적 명절인 동짓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정한 것이다. 이 날을 기점으로 빛이 어둠을 극복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 날은 일 년 중 가장 어둠이 긴 날이기도 하다. 참 암울하고 혼란스런 시국 한 가운데 있지만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이 계절에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용기를 내보면 좋겠다.

윤영훈 <빅퍼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