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관저 방콕’… 대통령 동선 안 묻는게 靑불문율

입력 2016-12-16 04:28 수정 2016-12-17 04:30

신비주의로 포장됐던 박근혜 대통령의 실생활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증언 등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 특유의 폐쇄적인 집무의 시작은 일상화된 ‘관저 근무’와 ‘혼밥’(혼자 먹는 밥)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각 부처 장·차관이 대통령 대면도 못할 때 최순실과 전속 미용사, ‘비선 의사’는 관저를 드나들며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하고 피부를 관리했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어느 누구도 대통령의 이런 비정상적인 근무 행태를 지적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기피한다는 사실은 취임 초부터 널리 알려진 얘기였다. 화장과 올림머리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선 외부와 접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밤늦게까지 보고서를 읽다가 수시로 수석비서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내용을 묻는다는 얘기가 회자됐다. 당시만 해도 이는 ‘여성 대통령’ ‘부녀 대통령’의 특수성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참모는 15일 “박 대통령은 16년을 청와대에서 생활했고 20대 때 이미 퍼스트레이디를 한 사람”이라며 “‘박근혜’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는 분위기였고 특별히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실장’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일주일에 대통령을 한번도 못 뵙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청와대 내부에선 대통령 동선을 굳이 알려고도, 묻지도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같은 공식일정이 없는 날에는 주로 관저에 머물렀다. 식사는 TV를 보면서 혼자 하는 일이 많았다는 게 3년4개월간 대통령 식사를 책임졌던 청와대 전 조리장의 증언이다. 박 대통령은 공식 행사차 지방을 방문할 때도 현지 식당에 가기보다는 차 안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다고 한다. 최씨가 청와대에 들어와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하고 밥을 먹을 때도 이들과 겸상하지 않고 따로 식사할 만큼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해왔다. 이렇듯 베일에 싸여있던 박 대통령의 일상이 ‘세월호 7시간’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속속들이 공개됐다.

청와대 공식 라인이 무력해진 틈을 비선이 파고들었다. 박 대통령은 머리 손질과 화장, 피부·건강 관리 등을 최씨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2005년부터 박 대통령 특유의 올림머리와 화장을 전담한 정송주·정매주 자매는 원래 최씨의 단골 미용사였다. 이들은 청와대 부속실 소속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돼 거의 매일 청와대를 찾아 박 대통령의 머리를 만졌다.

비선 의료의 실체도 확인됐다.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도 위촉 전 청와대에 들어가 박 대통령에게 태반주사를 놨다고 시인했다. 최씨 단골 의사인 김영재 원장은 청와대 출입구에서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는 이른바 ‘보안손님’이었다. 청문회에 나온 이병석, 서창석 전 대통령 주치의는 미용시술을 하거나 했다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했고 김 원장도 성형 시술은 하지 않았다고 밝혀 제3의 비선 의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4차 청문회에선 최씨가 청와대 내에서 집무를 봤다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청와대 (본관) 1층에 영부인 공간이 있는데 박 대통령의 경우 이 공간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며 “최씨가 이곳에 머무르며 업무를 보고 윤전추 행정관 등을 마음대로 불러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11월 초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한 뒤로는 공식 보고라인에 상당 부분 의지했다. 본관 집무실에서 한광옥 비서실장과 수시로 대책회의를 했고, 비서진이 근무하는 위민관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뒤늦게나마 집무의 정상화가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권한 행사가 정지되면서 박 대통령은 다시 관저의 칩거 생활로 돌아갔다. 이후로는 박 대통령이 탄핵 심판과 특검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는 얘기만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는 연일 터져나오는 대통령 관련 의혹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사안들”이라고 말했다.

글=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