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이자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문제를 논의했다. 두 정상은 16일 도쿄에서도 정상회담을 갖는다. 푸틴 대통령의 주요 7개국(G7) 방문은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처음이다.
아베 총리는 야마구치현 나가토유모토 온천의 료칸(전통적 숙박시설) ‘오타니 산장’에서 열린 첫날 회담에서 러시아에 대규모 경제협력을 약속하는 대신 쿠릴 열도 4개섬을 반환받는 ‘빅딜’을 거듭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아베 총리로부터 쿠릴 열도 주민이 영토 문제와 관련해 쓴 러시아어 편지를 전달받아 직접 읽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는 회담 직후 취재진에게 “3시간에 걸친 정상회담에서 평화조약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쿠릴 열도에서의 공동 경제활동에 관한 협의를 촉진하자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16일 도쿄 정상회담 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또 두 정상은 양국의 외교·국방장관이 참석하는 ‘2+2 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2+2 회담은 북한발 안보 불안이 커진 2013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린 뒤 지금껏 열리지 못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아베 총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엄격한 이행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압력을 가해 6자회담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에도 불구하고 쿠릴 열도 반환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회담에 앞서 두 정상은 섬 반환 문제를 놓고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쿠릴 4개섬) 옛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단단히 가슴에 새기고 협상에 임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날 오전 일찌감치 야마구치에 도착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 여파로 예정보다 늦게 출국해 회담 일정이 2시간30분 지연됐다.
옛 소련이 2차대전 승전국이 되면서 점령한 쿠릴 열도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지하자원의 보고(寶庫)다. 1956년 소련과 일본은 ‘평화조약을 체결하면 홋카이도에 인접한 시코탄과 하보마이섬을 일본에 반환한다’는 공동선언을 발표했지만 60년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되자 소련이 반환 의사를 철회했다. 이후 지금까지 양국은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당초 반환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설 것 같던 푸틴 대통령은 최근 강경론으로 돌아섰다. 일본은 4개섬 전체 반환 약속을 바라고 있지만 푸틴은 2개섬만 해당된다는 입장이다. 또 반환의 전제조건인 평화조약 체결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러시아 경제제재에 일본이 가담하는 현 상황 아래선 곤란하다는 뜻을 밝혔다.
푸틴이 강하게 나오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미·러 관계의 급진전이 예상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도쿄 템플대 제임스 브라운 교수는 “러시아는 쿠릴 열도를 외교 전략의 도구로 쓰고 있어 일본과 당장 합의를 볼 생각이 없다”고 진단했다.
천지우 신훈 기자 mogul@kmib.co.kr
몸값 오른 푸틴 지각하고 아베는 기다리고
입력 2016-12-15 18:18 수정 2016-12-16 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