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수사 끝나고 특검 수사 직전… ‘틈새’ 공략한 헌재

입력 2016-12-16 04:09
헌법재판소는 15일 서울중앙지검과 특별검사팀에 ‘최순실 게이트’ 수사자료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을 “수사·재판 중인 사건의 기록 제출을 금지하는 법 단서조항의 제한을 극복할 묘수”라 자평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국정농단 사태 수사는 관련자들의 기소와 함께 일단 종결됐고, 박영수 특검팀은 본격적인 수사에 앞서 특수본의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이때에 맞춰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이 오히려 검찰·특검에 헌재 협조의 명분을 준 셈이라는 게 헌재의 내심이다.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에는 대통령 측근들의 내사종결 자료를 제출받는 데 실패했었다. 헌재 관계자는 “틈새를 공략했고, 시추는 두 군데에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끝마쳤고 특검은 개시 전이다

헌재법 제32조는 “재판부는 결정으로 다른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에 심판에 필요한 사실을 조회하거나, 기록의 송부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재판·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해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조항 때문에 이번에도 헌재가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처럼 한정적인 기록을 받는 방식을 써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컸다. 결국 당사자들이 직접 법원 등에 사본을 요구, 제출받은 뒤 증거로 동의해야 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헌재는 이날 서울중앙지검과 특검에 정면으로 관련기록 송부를 요구했다. 헌재 관계자는 “인증등본 송부촉탁 방식이 아닌, 준용된 형사소송법에 따른 직권적인 문서 송부 요구였다”고 설명했다. 재판관들은 회의에서 현재 시점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본의 기소 이후이자 특검의 수사 개시 전임을 주목하고 이같이 결정했다. 헌재 관계자는 “법조인들은 알아들을 강한 메시지”라며 “검찰과 특검이 기록을 보내리라 예상한다”고도 말했다.

현 시점을 수사·재판이 완전히 분절된 시기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검이 준비기간에도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했고, 특수본의 공소유지 절차 역시 진행 중이라서 재판이 개시된 셈이라는 시각이었다.

헌재는 “특수본의 기소와 함께 수사는 일단락됐고, 특검 역시 자체적인 수사는 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최순실(60·구속 기소)씨 등의 사건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재배당되고 공판준비기일이 잡힌 데 대해서도 “아직 첫 공판이 열리기 전이라서 재판 중인 사건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내사기록도 넘어오나

헌재가 서울중앙지검과 특검의 명시적 수사 기간을 피해 절묘한 시기에 기록 제출을 요구함에 따라 정식으로 사건화되지 않은 국정농단 주역들의 첩보까지 헌재 재판관들에게 넘어올지 관심을 끈다. 대검찰청은 2004년 “피내사자들의 명예를 보호하고 사실상 피의사실이 공개되는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 측근비리 관련 내사기록 제출을 끝내 거부했었다.

당시 소추위원이던 김기춘(77)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헌재가 결국 내사기록을 제출받지 못하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공개변론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헌법기관이 대통령의 진퇴를 결정함에 있어 수사기관 기록을 제출받지 못하거나, 기록보관서에 가서 열람할 수도 없다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며 “이 문제는 앞으로 헌재의 운영 및 권능행사와 관련해서 매우 중대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입증방해 행위가 계속된다면 역사적인 헌법재판이 심리미진이라는 우려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12년 만에 되풀이된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탄핵소추 사유의 대부분은 최근까지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수사한 결과들로 채워져 있다. 탄핵심판의 등장인물과 쟁점이 2004년보다 커 수사기록 하나하나의 가치는 훨씬 커졌다.

알려진 대로 검찰의 수사기록은 1t 트럭에 싣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양이다. 헌재는 “수사기록을 특정해 요구하지는 않았다”며 “송부 여부는 검찰과 특검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검찰·특검이 탄핵심판에 협조할 것이라 보는 입장이지만, 최악의 경우 2004년에 택한 당사자 사본 요구 방식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특검과 검찰 모두 “검토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