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사모it수다] 흙수저 사모의 12월

입력 2016-12-16 20:16

어느덧 2016년 달력도 이제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설렘과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12월이다.

이맘때는 교회를 사임하는 교역자들과 새로 부임하는 교역자들과의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시기다. 사모들에게도 남편과 함께 정들었던 교회, 성도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사역지에서 관계를 다시 만들어 가야 하는 시기다. 그래서 말 못할 고민이 많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얼마 전 L사모의 사연을 듣게 됐다. “남편이 새로운 사역지로 옮기기 위해 기도중인데 아직 사역지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뤄진다는 것을 알지만 목회자 집안의 사역자들이 비교적 쉽게 사역지를 옮겨가는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진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가장 공평해야 할 교회에서조차 인맥에 밀려 기회를 얻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사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L사모의 고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교역자들 사이에서도 이른바 ‘수저계급론’이 존재한다. 당사자의 노력보다는 부모의 능력이 더 크게 사역을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교회의 오랜 병폐로 지적되는 교회 세습은 수저계급론의 대표적인 사례다. 세습뿐만 아니라 교회현장에서도 소위 ‘금수저’들의 존재감이 드러날 때가 있다.

K사모는 “남편과 같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교역자 중에 담임목사님의 친구 아들이 있었다. 친구 목사님이 담임목사님한테 ‘우리 아들 휴가 좀 줘’라고 부탁해 그 교역자는 일주일 넘게 사모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며 “그때 우리 남편이 조금 짠해 보였다”고 말했다.

“내가 좀 더 남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집안의 아내가 아니라서 가슴이 아프다”는 사모의 고백을 들을 때면 듣는 입장에서도 퍽 서글퍼진다. 일부 신학생들 사이에서 이왕이면 금수저 아버지를 둔 사모를 만나기 원한다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는 소식에는 처참한 느낌마저 든다.

금수저나 흙수저라는 말은 어쩌면 교회 안에서는 통용돼선 안될 것 같은 단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 교회에서 이미 학력과 인맥, 그리고 좋은 배경 같은 스펙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자식에게 금수저를 줄 수 있는 목회자 중에도 금수저 대신 ‘믿음의 수저’를 물려주는 이들도 많다. 광야와 같은 결핍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뜻을 구하고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더욱 온전한 신앙의 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일 게다. 자신이 물고 있는 금수저의 가치를 알면서도 스스로 금수저 대신 ‘믿음의 수저’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예수님도 이 땅에 흙수저로 오셔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세상을 섬기셨다. 그 길은 좁고 험한 고난의 길이었지만, 영광의 길이기도 했다. 세상의 넓고 곧은 길이 아닌, 하나님만 의지하며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의 은혜를 간구하는 흙수저 목회자와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모의 12월을 응원한다.

박효진 온라인뉴스부 기자 imhere@kmib.co.kr

이 코너는 사모인 박효진 온라인뉴스부 기자가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