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4부 →1부… ‘흙수저’의 반전 드라마 ‘강지용’

입력 2016-12-16 04:04
강원 FC로 이적한 강지용(오른쪽)이 부천 FC 소속이던 지난 8월 10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서울 이랜드 FC와의 2016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경기에서 안태현과 볼을 다투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곳엔 관중도, 경기장 가득 울려 퍼지는 응원 음악도, 선수 소개도 없었다. 월급도 없었다. 손에 쥐는 돈이라곤 월 150만 원가량의 승리 수당이 전부였다. 이중 절반 이상을 부모님께 드렸다. 받는 부모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K3리그(4부 리그·아마추어) 생활은 서글펐습니다. 지켜보는 관중도 없이 우리끼리 볼을 찼거든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1부 리그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뛰었죠.”

지난 11일 강원 FC와 2년 계약을 맺은 강지용(27). 1부 리그에서 4부 리그로 추락했던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다시 1부 리그에 오르는 인생 역전 드라마를 썼다. 그의 축구 인생은 잉글랜드 아마추어리그에서 축구와 공장 일을 병행하다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재능을 활짝 펼친 제이미 바디(29·레스터시티)를 연상시킨다.

강지용은 키 187㎝, 몸무게 85㎏의 탄탄한 체구를 자랑하는 중앙 수비수다. 제공권은 물론 스피드, 빌드업 능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린 시절은 화려했다. 서울 장훈고 시절 U-19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고, 2009년엔 U-20 대표팀에 선발됐다. 2009년 부푼 꿈을 안고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2009 시즌 한 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했다. 2010 시즌 5경기에 나섰지만 다음 시즌 또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2012 시즌 부산으로 이적했으나 1경기 출장에 그치고 시즌이 끝난 뒤 방출 통보를 받았다.

강지용은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 옌볜 FC에 입단할 예정이어서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거기서 한 달 반 동안 훈련을 하던 중 갑자기 구단 측에서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해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회고했다. 고난의 시작이었다.

강지용은 한국으로 돌아와 K리그에 등록하려했지만 기한이 이미 지난 뒤였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선택한 팀은 K3리그의 경주시민축구단이었다. 그렇게 좋았던 축구가 싫어졌다. 당시 축구를 포기하고 경주에 있는 한 공장에 들어가려고 했다. “이러려고 축구를 했나 싶어 욱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 주신 부모님 얼굴이 자꾸 눈에 어른거려 차마 공장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시민축구단에서 의욕없이 활동하던 강지용은 어느 날 우연히 경주 한수원과 용인시청의 내셔널리그(3부 리그) 경기를 보고 선수들의 높은 수준에 깜짝 놀랐다. 나태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체력을 강화하고 기본기도 다시 다졌다. 2013년 말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부천의 부름을 받았다. 2014시즌 30경기를 시작으로 2015년 34경기에 출전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2016 시즌 38경기에 나서 부천의 챌린지 공동 최소 실점(40경기 33실점)을 이끌었다. 클래식 팀에서 러브콜이 잇따랐다.

강원은 그에게 “내년 시·도민구단 최초로 정규리그 3위 이상에 올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루겠다. 그 과정에서 너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합류를 요청했다. 의미 있는 도전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강지용은 강원이 내민 손을 잡았다. “아직 내 축구 인생에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는 강지용.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무명 선수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오늘도 축구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