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앞에서 얼음나라, 얼음공주가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촛불은 꺼진다고 하던 여당 국회의원의 말은 틀렸습니다. 바람이 거셌지만 촛불은 횃불이 되었고, 작은 촛불로 시작된 민심은 마침내 겨울공화국의 육중한 철문을 서서히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이 횃불은 머지않아 거대한 들불이 되어 묵은 땅을 갈아엎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인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고 독일 언론이 지적했을 때 부끄러움과 분노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2년 반이 지난 후 한국인은 역사로부터 확실하게 배웠다는 것을 온 세계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29일 시작된 제1차 촛불집회에는 서울에서만 2만명이 모였습니다. 탄핵 전인 12월 3일 제6차 집회에는 서울에만 170만명, 지역에서는 62만명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12월 10일에 열린 제7차 집회에는 서울에서 80만명, 지역에서 24만명이 모였는데 7차에 걸친 촛불집회에 전국 기준 총 759만명이 참가했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은 누구나 우리 국민의 놀라운 위대함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만 170만명이 모인, 아니 유모차를 타고 온 아기들, 어린이들과 엄마들, 중·고생들도 참여한 광화문 집회에서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행진을 주도하지 않았지만 참여자들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했습니다.
저마다의 생각을 표출하는 참으로 기발하고 창의적인 온갖 구호와 소품들은 어디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을까 의아할 정도로 경이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폭력을 스스로 막았고, 추운 날씨에 먹고 마실 것을 나누는 대동의 축제였습니다. 한번 신명나면 우리 국민은 놀라운 감동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우리는 1919년의 3·1 독립만세운동에서 1960년의 4·19 학생혁명,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 1987년의 6월 항쟁, 2002년의 월드컵 경기,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 반대 촛불집회, 2010년 4대강 반대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매우 중요한 고비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국민이 들고 일어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는 2016년 한국의 촛불 국민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벨 평화상 제정 후 지금까지 상을 받은 단체는 22개에 달합니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2007년)를 비롯한 유엔 기구들은 물론 국경없는의사회(1999년) 등도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전례는 없습니다.
그러나 2016년 한국의 촛불 국민은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부패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권력을 탄핵했습니다. 단지 죄를 범한 권력자를 평화로운 방법으로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안 된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촛불을 든 759만명의 국민이 새로운 세상을 위해 평화롭게 행진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1919년의 3·1 독립만세운동이 중국의 5·4운동,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운동, 이집트의 반영 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세계는 다시 2016년 한국의 촛불 국민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동 세상을 만들려는 뜻을 가지고 함께 높이 든 촛불은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대한 우리 국민을.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채수일] 촛불 국민에게 노벨평화상을
입력 2016-12-15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