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두근거림, 살아있다는 표지”

입력 2016-12-15 17:35
“호기심처럼 삶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없다. 살아 있다는 표지다. 앞으로 마른데 진데 가리지 않고 두근거리겠다.”

팔순을 코앞에 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최근 신작 시집 ‘연옥의 봄’을 낸 원로 황동규(78·사진) 시인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으로 시작하는 시 ‘즐거운 편지’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바로 그 시인이다.

직전 시집 ‘사는 기쁨’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48년 시작인생을 관통하는 줄기는 삶을 노래함이다. 여전히 젊은 사람 못지않은 밝음과 유머가 있다. 미완을 스스로 긍정하는 삶의 태도에서 따스함이 스며 나오는 시편들을 엮었다.

‘상처 많은 삶이라도/ 애써 별일 아닌 듯 상처들을 살다 가게 했다/ 이젠 내보일 만한 상처 하나 흠집 하나 남아 있지 않다고? / 두 손으로 무릎을 탁 치게.’(‘무릎’의 부분)

이런 긍정성은 시 작업에 임하는 자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향기 이 밤으로 족하다!’는 느낌으로/ 허파를 적신다./ 시여, 완성되고 싶지 않더라도 슬며시 나와/ 이 밤을 즐기다 가시라.’(‘열대야 백리향’의 부분)

나이가 나이다. 늙음과 죽음이 시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궁상스럽거나 처연하지가 않다.

‘언젠가 나와 친구들이 가로금처럼 걷다가/ 하나가 된 검붉은 땅 검붉은 하늘로 스며들어가/ 하나가 되리라는 이 느낌! /흉치만은 않으이’(‘아픔의 부케’의 부분)

노년이 되서도 친구들과 교유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는 죽음조차 친하게 껴안는다. 그리하여 급기야 ‘원한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사방에 녹음 넘칠 때 가고 싶다’라고 원하는 죽음의 시기를 언급하는 이 놀라운 여유와 유머라니.

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해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호암상 등 국내 굴지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시 ‘즐거운 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인 사랑 노래”라는 평을 들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