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 알레포 탈환… 문명의 무덤 된 ‘시리아 진주’

입력 2016-12-15 00:09 수정 2016-12-15 01:14
시리아 정부가 알레포 전투에서 승리를 선언한 14일(현지시간) 정부군이 구시가지에 있는 우마야드 사원 안을 살펴보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의 우마야드. 두 사진의 대비되는 모습은 지난 수년간 이어진 내전의 치열함과 주민들이 겪었을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AP뉴시스
시리아 내전의 상징인 북부 중심지 알레포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승리를 선언했다. 2012년 7월 알레포가 정부군과 반군의 격전지가 된 지 4년 반 만이다. 13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온 러시아는 반군이 알레포에서 전투를 중단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14일 오전 5시부터 반군 측이 합의된 경로를 통해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반군 측은 알레포 서쪽 이들리브주로 이동하겠다고 밝혔다. 알레포 주민 최소 5만명도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정부군은 이들을 위해 버스를 마련했고 주민을 집결시켰다. 정오쯤 피난 행렬이 모인 곳에 반군이 다시 사격을 가했다. 로켓포도 떨어지면서 한때 아비규환이 연출됐다. 여아 2명을 포함해 최소 4명이 숨졌다. 러시아는 반군이 먼저 휴전합의를 깼다고 주장했다. 반군은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면서 책임공방이 계속됐다.

지난 4년 반 동안 알레포는 정부군 측 러시아와 이란, 반군 측 터키와 미국의 대리전 속에 사실상 방치됐다. 산업과 금융 중심지로 ‘시리아의 진주’라 불렸지만 주요 시설이 모두 파괴되면서 갖가지 참상이 속출하는 ‘시리아의 눈물’로 전락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내전 기간 최소 2만명이 알레포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난 7월 러시아와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와 시아파 민병대를 등에 업은 정부군이 동부를 봉쇄하고 대대적 공세에 나서면서 피해가 커졌다. 물과 전기, 음식과 의료품이 동나 최소 25만명의 주민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정부군이 알레포에서 승리를 선언하면서 내전의 승기 또한 쥐게 됐다. 그럼에도 내전 종식까진 갈 길이 멀다. 반군뿐 아니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이 시리아 곳곳을 장악한 상태다. 정부군은 각 지역에서 탈환전을 벌이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반군이 지역을 장악하는 방식에서 게릴라전으로 태세를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결정이 이란의 승리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전력을 과시하면서 반군 측인 미국에 대항할 경쟁력을 얻었지만 현 중동 정세에 비춰 가장 재미를 본 건 이란이라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명한 미국의 차기 외교안보 라인은 반(反)이란파다. 그들이 자리를 꿰차기 전에 서둘러 이란이 알레포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복에 계속되는 비극

포성이 잦아들어도 주민이 느끼는 공포는 증폭되고 있다. 정부군이 반군 지역에 남아있던 주민을 대상으로 보복에 나섰다는 주장이 나와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졌다. 지금껏 정부군이 탈환한 다마스쿠스 외곽 야르무크, 다라야, 홈스 등에선 주민이 처형당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인도주의적 활동을 벌인 의료진과 구조대원도 학살이나 고문을 당할 위험에 처했다. 가디언은 정부군이 반군을 포용하려는 제스처가 보이지 않는다며 알레포의 고통이 새 국면에 접어든 것일 뿐 끝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옌스 라에르케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대변인은 이 상황을 “휴머니티의 완전한 붕괴”라고 표현했다. 구호단체 ‘하얀 헬멧’의 이스마일 알랍둘라는 “전 세계가 우리를 실망시켰다. 자원봉사자나 주민을 보호하지 못했다. 우리도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서맨사 파워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안전보장이사회에 반군 퇴각 과정을 감독할 국제 옵서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거리에서 총에 맞거나 정부 세력에 끌려갈 수 있다는 공포에 직면한 주민들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