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이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문이 이뤄지지 아니한다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우리 헌법의 정신과 헌법재판소의 위상에 비추어 유감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탄핵심판 사건에 나쁜 선례가 될까 걱정이 됩니다.”
2004년 4월 23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제5차 변론. 재판부가 소추위원 측의 노 대통령 본인신문 신청을 기각하고 폐정하려 하자 김기춘(사진)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급히 발언을 요청했다. 소추위원이던 그는 “헌정사 초유의 역사적 심판사건에서 피청구인에 대한 직접 신문이 이뤄지지 못한 점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대법관이라든지 다른 탄핵심판이었다면 당연히 피청구인 신문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종변론 때에는 대통령의 출석 거부를 재차 언급하며 ‘집요한 입증방해 행위’로 규정하기도 했다.
향후 탄핵심판 사건의 나쁜 선례를 걱정하던 그의 우려대로 12년 뒤인 현재 헌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 심판이 한창이다. 그가 비서실장으로서 모셨던 박 대통령이 피청구인 입장이 됐는데,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대국민 담화 약속을 뒤집고 검찰 조사마저 거부했던 박 대통령인 터라 출석을 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더욱 크다.
2004년 헌재가 대통령을 굳이 심판정에 부르지 않은 이유는 사실관계 확인 필요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 대리인단은 “형사사건의 기록인증등본촉탁을 받은 자료로 사실관계가 분명히 밝혀졌다”며 “더 이상 당사자 본인신문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를 받아들여 “사실관계의 확인에 당사자 본인신문이 부적절하다고 판단, 채택하지 않겠다”고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 대통령이 탄핵소추안의 사실관계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와 상황이 달라졌다는 해석이 크다. 박 대통령은 본인이 공동정범으로 적시된 검찰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수사 결과에 대해 ‘사상누각’ ‘환상의 집을 지었다’며 공개 비난했다. 최순실(60·구속 기소)씨 등에 대한 법원과 검찰의 기록을 협조 받는 데 성공하더라도, 여전히 ‘세월호 7시간’ 등 박 대통령 본인만이 알고 있는 탄핵 사유 관련 사실이 있다는 지적도 크다.
2004년 노 대통령 측은 “대통령 본인이 심판정에 출석한다면 사실관계 확인이 쟁점이 되는 게 아니라 정치적 공방이 쟁점이 된다”며 불출석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번 탄핵사건은 12년 전에 비해 정치적 공방 성격도 크지 않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대통령 탄핵심판 불출석 유감… 나쁜 선례 걱정된다”던 김기춘, 朴 대통령은 헌재 심판정 설까
입력 2016-12-15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