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의 공개수배 덕분일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7일간의 침묵을 깨고 오는 22일 청문회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네티즌들은 ‘수배전단’(사진) 만들고, 현상금을 내놓고, 차량번호까지 추적하며 그를 쫓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압박한 동영상, 최순실(60)씨 딸 정유라(20)씨의 페이스북 글 등을 발굴해낸 것도 네티즌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검찰·경찰과 함께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가 제3의 수사기관이 된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네티즌의 활약은 통쾌하지만, 검·경 수사라인에 대한 국민 불신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14일 우 전 수석의 5차 청문회 출석 입장을 접한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주갤)’는 축제 분위기였다. 지난 7일 우 전 수석이 동행명령장을 받지 않기 위해 잠적한 뒤부터 주갤이 추적의 선봉을 자처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 전 수석 자동차를 추적하고 장모 명의 건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빌딩 앞에서 잠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우씨를 쫓았다.
네티즌의 활약에 ‘검티즌’(검찰+네티즌)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지난 7일 국회 2차 청문회 당시 “최순실은 모른다”고 일관하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네티즌의 영상 제보에 황급히 증언을 번복했다. 국회의원실로도 네티즌과 국민들의 제보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교포들의 제보로 정유라씨의 독일 소재지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심지어 “교포와 유학생들이 정씨의 집 앞에서 소위 말하는 뻗치기(무작정 기다리기)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불신을 방증한다고 지적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네티즌들이 하는 일들은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앞으로 특검이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도록 맡겨야겠지만 이미 우리사회는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꼬집었다.
법의 허점이 네티즌 수사대를 낳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 전 수석이 그랬듯 국회 동행명령장은 본인이 직접 수령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다. 국회증언법이 증인출석 의무를 경시한 셈이다.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14일 국정조사 증인의 출석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네티즌의 추적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김 전 실장의 부인이 지난해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가 만든 빌로밀로 가방을 들었다는 의혹을 네티즌들이 제기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이 특정인을 압박하는 일이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정의감으로 행동하는 건 좋지만 법적으로 엄격히 따진다면 이는 사생활·인권 침해나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기획] 네티즌 수사대 맹활약… ‘제3 수사기관’?
입력 2016-12-15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