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인터넷방송 진행자(BJ)들이 호들갑 끝에 스티로폼 상자를 열었다. 귀뚜라미 수백 마리의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몇 마리가 상자 밖으로 튀어나왔다. 겁에 질린 BJ들은 소리를 내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유튜브 동영상 ‘대왕 귀뚜라미 1000마리 투척하기’의 도입부다. 이 영상은 BJ들이 귀뚜라미 수백 마리를 푼 뒤 제한시간 내 도로 잡아들이는 게임을 하는 모습을 담았다.
BJ들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귀뚜라미를 쫓는다. 서로에게 귀뚜라미를 뿌리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 와중에 귀뚜라미들이 짓이겨진다. 다 줍지 못한 귀뚜라미는 빗자루로 쓸어낸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웃음과 경악 섞인 반응을 댓글로 올린다.
애완·사료 목적의 곤충이 놀잇감으로 오용되고 있다. 곤충끼리 싸움을 붙이는 ‘투곤’에 이어 단순 장난감으로 취급하는 동영상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곤충도 엄연한 생명체여서 곤충학대라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
2014년 유튜브에 투곤 동영상이 퍼지면서 곤충학대 논란이 시작됐다. 곤충의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가거나 체액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연출되며 “재미로 생명을 죽인다”는 비판이 있었다.
동물과 달리 곤충을 학대하는 행위는 법으로 규제할 근거가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척추가 없는 곤충은 동물로 분류되지 않아 동물보호법상 불법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통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곤충은 곤충산업법으로 따로 구분된다. 곤충산업법 시행령은 왕귀뚜라미와 장수풍뎅이 등 곤충을 식용, 약용, 학습·애완용, 사료용 등으로 나눠놨다. 이외에 오락용 등으로 곤충을 이용하는 건 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의미다. 안정모 농식품부 종자생명산업과 사무관은 “판매 목적이 명확한 곤충을 학대하는 건 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곤충을 미래 농업자원으로 보고 육성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곤충을 사육하거나 곤충 및 부산물을 생산·가공·유통·판매하는 곤충산업 규모는 2011년 1680억원에서 지난해 3039억원까지 커졌다. 곤충 사육 농가는 2010년 265가구에서 2012년 384가구, 지난해 724가구까지 늘었다.
곤충을 반려동물처럼 기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반려곤충 인터넷 쇼핑몰 벅스베이는 올해 매출이 2014년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었다. 박경석 대표는 “곤충을 벌레나 해충으로 보던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보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사는 “왕귀뚜라미는 초보자도 손쉽게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맑은 울음소리를 내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곤충”이라며 “혼자 사는 가족이 늘어난 데다 곤충을 방제의 대상으로 보던 인식이 변하면서 사람들이 반려곤충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곤충은 파충류가 먹는 사료로 팔리기도 한다. 정대석 먹이창고 대표는 “귀뚜라미는 레오파드 게코 등 파충류가 좋아하는 고지방 건강식”이라면서도 “하지만 곤충을 먹이로 주는 것과 재미로 죽이는 행위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기획] 재미로 죽이는 ‘곤충학대’ 도 넘었다
입력 2016-12-1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