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자락에는 이런 옛길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경북 문경과 충북 충주를 잇는 하늘재와 그 뒤 바통을 이어받은 문경과 괴산 사이의 연풍새재 고갯길이 그것들이다. 하늘재는 신라가 2세기쯤 공격용 루트로 썼던 국내 최초의 군사도로다. 조선시대 새재길을 만들어 나라에서 관리하면서 하늘재는 옛길로 밀려났다. 하지만 1925년 이화령이 뚫리면서 새재 역시 옛길의 신세가 됐다. 이화령 또한 터널이 뚫리면서 구(舊)도로가 됐다. 답사객이나 산악인들만 찾던 옛길에 힐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고 있다.
하늘과 맞닿은 가장 오래된 백두대간 고갯길, 하늘재
하늘재 가는 길에 미륵대원지가 있다. 석굴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유일한 석굴사원이다. 석굴암이 굴을 파서 지었다면 이곳은 자연석을 쌓아서 만들었다. 고려 초기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굴의 지붕은 온데간데 없고 키 큰 미륵석불 하나만 서 있다.
미륵대원지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늘재 입구다. 하늘에 맞닿았다고 해서 지어진 하늘재는 충주 미륵리와 문경 관음리를 연결하는 옛 고갯길이다. 여기에서 하늘재 정상까지는 2㎞ 거리로 40분쯤 걸린다.
삼국사기에 ‘아달라 이사금 3년(서기 156년)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기록돼 있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길을 개척했고 이 길을 통해 한강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죽령길이 이보다 2년 뒤에 개척됐으니 기록상으로 볼 때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두대간 고갯길인 셈이다. 얼추 2000년이라는 세월을 품고 있다. 조선 태종 때 문경새재가 놓이기 전에는 1000년 넘게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새재가 뚫리면서 관료나 양반,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이 길을 이용했다. 하늘재 가는 길은 새재에서 밀려난 서민들의 길이 됐다. 이 길은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피난길이기도 했다. 신라의 흥망성쇠에 따른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처음 울창한 숲을 따라 가는 약 300m의 길은 좁고 구불구불한 오솔길로 돼 있는 하늘재역사자연관찰로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서인지 한사람이 다닐 정도로 좁다. 산책하듯 10여분 간 거닐면 폭 2m 남짓의 제법 넓은 숲길로 들어선다. 경사가 완만하고 험하지 않아 아이와 함께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
미륵리에서 1.7㎞ 정도 올라가면 명물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2010년 4월 발견된 ‘연아나무’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에서 선보인 ‘비엘만 스핀’ 자세를 빼닮았다. 연아나무를 지나 모퉁이를 몇 번 돌면 계립령, 마목현 등으로 불렸던 하늘재 정상이다. 문경쪽 도로는 매끈하게 포장돼 있다.
정상에서 오른쪽 나무 계단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하늘이 열린다. 하늘재보다 훨씬 높고 험준한 고개도 하늘이란 이름을 갖지 못했다. 고작 해발 525m에 불과한 이 고개가 왜 ‘하늘’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꿰찼는지 실감할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손에 닿을 듯 펼쳐진 푸른 하늘과 함께 건너편으로 암반이 드러난 포암산(962m)이 우뚝하다. 만수봉, 포암산, 탄항산, 부봉, 마패봉에 걸쳐진 백두대간의 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은 고갯길에 얽히고 깃든 굴곡진 삶의 흔적들이 얘기를 풀어놓는 듯하다.
길손들의 애환 서린 ‘옛 고속도로’, 연풍새재
백두대간에 놓인 조령산(1017m)은 괴산과 문경의 경계로, 산림이 울창하고 암벽 지대가 많아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산세가 아름답다. 새재 정상에 제3관문인 조령관이 있다. ‘조령관 지붕의 빗물이 고사리 마을 쪽으로 떨어지면 남한강으로 흐르고, 문경 2관문 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말이 흥미롭다. 예부터 괴산 사람들은 조령관을 넘어 한양으로 향하는 소조령까지 8㎞를 연풍새재로 불렀다. 문경새재가 유명해지면서 소리 없이 잊혀졌지만 괴산군이 조령산자연휴양림 입구부터 조령관까지 1.5㎞를 연풍새재 옛길로 복원하면서 되살아났다.
연풍새재는 연풍면 고사리(古沙里)마을에서 접어든다. 이 마을의 현재 명칭은 원풍리이지만 고사리마을로 더 잘 통한다. 조선시대 연풍현 고사리면이었을 만큼 큰 마을이었다. 옛 신혜원이라는 원(院)이 있던 곳이다. 원은 조선시대 때 길손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말을 매 놓고 여장을 풀던 곳이다. 이곳에서 길손들은 먹기도 하고, 자기도 했다. 17∼18세기에는 주막만 100여 가구가 될 정도로 많았으나 광복 후에 자취를 감췄다. 마을에는 말을 재우며 묶어놓았던 마방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헐려 없어졌다.
고사리 마을에는 화려한 휴양림과 펜션, 음식점들 뒤꼍에 이 마을을 지켜 온 집들이 초라하게 꺼져 있다. 마을 들머리에는 350살이 넘은 소나무 당목이 있고, 그 아래에는 고사리면에서 세운 애민선정불망비(愛民善政不忘碑)가 부러진 채 귀부 위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 있는 마을자랑비에는 신혜원에 널다리가 놓여 있어 판교점(板橋店)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이곳 사람들은 새재를 넘어 문경장에서 장을 많이 봤다. 연풍장이나 수안보장도 있지만 문경장이 더 커서 물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에서 경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본격적인 연풍새재 옛길은 조령산자연휴양림에서 시작된다. 약 30분이면 하늘이 트이면서 조령관에 이른다. 백두대간 조령 표석이 우뚝 서 있고 정자, 조형물 등 다양한 상징물이 놓여 있다. 북으로는 월악산과 소백산, 남으로는 속리산으로 백두대간이 이어진다. 조령약수 방면으로 신선암봉과 조령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유건상 충북도 관광항공과장은 “충북은 국토의 중심에 있어 우리 선조들이 지나다니던 옛길이 많은데, 4계절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인해 지금은 역사탐방뿐 아니라 힐링여행을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며 “앞으로 숨겨진 옛길들을 더욱 발굴해 충북의 주요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메모
트레킹 뒤 ‘왕의 온천’에서 피로 회복… 꿩요리·산채정식 실속 먹거리 푸짐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출발하면 중부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괴산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수안보 방면으로 달린다. 하늘재는 수안보에서 597번 지방도로를 따라 지릅재를 지난다. 미륵대원지가 출발점이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미륵대원지’로 정해야 한다. ‘하늘재’로 하면 경북 문경 방향으로 알려주니 주의가 필요하다.
연풍새재길의 출발점은 ‘조령산자연휴양림’이다. 수안보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연풍 방면으로 가다가 은행정교차로에서 조령관문 방면으로 방향을 잡은 뒤 소조령에서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 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버스로는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괴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약 2시간 소요된다. 괴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안보행 버스를 탄 뒤 신혜원에서 하차하면 조령산자연휴양림까지 도보로 30분 걸린다. 조령산자연휴양림(043-833-7994), 조령산숲속의펜션(043-833-0795) 등에서 숙박할 수 있다.
트레킹을 다녀온 뒤 ‘왕의 온천’으로 불리는 수안보온천에서 피로를 날릴 수 있다. 53도의 약알칼리성 온천수는 칼슘, 나트륨, 마그네슘 등 각종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피부 미용, 대사 촉진, 신경통 등 다양한 질환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안보에는 꿩요리와 산채정식이 유명하다. 산채전문점 ‘청솔식당’(043-846-6373)은 직접 기른 채소와 다양한 산나물을 푸짐하게 내놓는 실속적인 맛집이다.
충주·괴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