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법치는 허사(虛辭)이고 권력자가 법을 주물럭대던 왕조시대 유풍이 남아 있어서는 아닐까. 반면 법이 어떤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상(至上)의 가치를 누리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럴 만도 하다. 고유한 인습을 지닌 채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윤리의식도 행위규범도 제각각인 이들을 묶어 하나의 국민으로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서로 다른 윤리관과 도덕률 위에 존재하는 보편적이고 강압적인 굴레, 바로 법이다.
그러다보니 미국 영화에는 법정 드라마가 많다. 가장 최근의 법정 영화 한 편을 봤다. 여성 감독 코트니 헌트가 연출한 ‘순수한 진실(Whole Truth, 2016)’. 아버지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10대 청소년의 변호인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는 소년이 과연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다. 관심사는 오로지 의뢰인을 감옥에 보내지 않는 것뿐이다. 그의 독백 중에 이런 것도 있다. “재판을 하다 보면 변호사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온다. 의뢰인의 안전이냐, 순수한 진실이냐.” 결국 의뢰인의 안전을 택한 리브스는 피고인의 예상치 못했던 도움을 받아 무죄 평결을 이끌어내지만 그 뒤에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린다.
비슷한 소재를 배심원의 시각으로 그린 영화도 있다. 최고의 법정 드라마로 자주 인용되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이다. 역시 아버지 살해 혐의를 받는 10대 청소년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배심원 12명은 소년의 유죄를 확신한다. 딱 한 사람(헨리 폰다)만 빼고. 그는 ‘합리적 의심’을 자꾸 불러일으켜 철옹성 같던 다른 배심원들의 마음을 허물기 시작해 결국 배심원단 전원 무죄 평결을 이끌어낸다. 그 과정의 긴박감과 감동적인 결말이라니.
좋은 법정 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 칼 같은 법치의 중요성이다. 무늬만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법치를 강조하는 좋은 법정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00> 法治와 법정영화
입력 2016-12-13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