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곽금주] 유머와 풍자, 촛불시위의 힘

입력 2016-12-13 18:27

국정농단 사건은 국민들을 분노케 하였고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7주째 계속된 촛불시위는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평화로웠다. 촛불시위가 아니라 촛불축제라고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음악 공연과 다양한 퍼포먼스로 주말만 되면 거대한 축제의 장이 벌어졌다.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은 기본적으로 그 모임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와 관련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즐거운가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의미 있는 모임일지라도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권력층의 배신과 불신으로 인해 엄청난 분노를 느끼는 상황에서도 그런 부정적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웃음과 해학으로 바꾸고 즐기는 장으로 승화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위 현장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패러디물이나 풍자는 너무나 창의적이다. 그뿐 아니다. SNS는 물론이고 TV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다시 풍자의 개그가 등장하고, 뮤지컬이나 연극에서도 현 시국을 풍자한 대사가 난무하고 있다. 상대나 상황에 대해서 암시적인 비판을 하는 풍자는 인간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대화 방법 중 하나이다. 풍자란 현실의 재미있는 왜곡이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거나 위협적이 될 수 있는 공격 충동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유머로 방출하게 해주는 힘이다. 상대가 경멸스럽지만 어찌됐든 힘을 가지고 있을 때, 때론 직접적인 공격성은 표출되기 어렵다. 이럴 때 그 상대에 대해서 유머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된 공격일 수 있다. 이는 직접적인 공격성만큼이나 효과적일 뿐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분노는 사회적으로 위협적인 폭력을 만들기 쉽다. 분노는 다른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게 되고 또 스스로도 사실을 판단하지 못하게 해서 문제해결능력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분노의 시위는 폭력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런 경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조차 움츠러들고 방어를 하게 된다. 결국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분노는 이성보다 감정에 더 의존한다. 그러나 유머나 풍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지적인 영역을 먼저 활성화시키게 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해석하느라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분노의 감정은 약화되고, 그리고 의미를 해석하고 나서 도리어 웃음이라는 긍정 정서가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현실에서의 억압,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부정적인 상황이지만, 풍자는 현실이 아닌 무한한 힘의 세계, 이상적 세계를 상상하게 해준다. 웃음이라는 긍정 행동 안에 무서운 분노를 감추고 있는 엄청난 힘인 것이다. 이런 풍자의 유머는 더욱 그 안의 힘을 비축하고, 그래서 오랫동안 그 힘을 유지시키게 해준다. 나아가 그 힘은 여러 사람을 집약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폭력행동으로 이어지는 분노가 아니라 긍정 분노가 작용하게 되는 거다. 생산적 에너지인 셈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성숙한 인간은 유머를 방어기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각한 상황에서 그 긴장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바로 유머인 것이다. 이번 촛불시위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우리 사회가 농락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충격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단순한 분노 표출이 아닌 역동성 있는 소통 창구로 활용하였다. 스마트 시대의 스마트한 주권자라 하겠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