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문체부, 작년 국립극장 마당놀이 공연 취소 압력

입력 2016-12-13 17:21 수정 2016-12-13 20:08
지난 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의 한 장면. 이 작품은 최순실 게이트에 빗댄 풍자와 패러디로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해 공연 취소 압력을 받았던 ‘춘향이 온다’는 다른 작품에 비해 유난히 풍자와 해학이 적었다. 작은 사진은 두 작품을 연출한 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국립극장 제공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손진책(69·사진)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한 국립극장 마당놀이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극장과 손 전 감독의 측근 등 복수의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중순 문체부로부터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최근 털어놓았다. 이어 “손 전 감독이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부녀를 풍자해 연극계 검열논란의 뿌리가 된 연극 ‘개구리’(박근형 연출) 공연 당시 예술감독이었고, 그가 연출하는 마당놀이가 시사 풍자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으로 압력의 배경을 추측했다. 이와 관련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은 “대답하기 어렵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손 전 감독은 2010년 11월 재단법인으로 바뀐 국립극단의 초대 예술감독을 맡아 3년간 기반을 무난하게 닦음으로써 연임이 유력시 됐다. 하지만 2013년 9월 ‘개구리’에 대해 일부 언론이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한 뒤 논란이 커지자 연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의 압력에도 지난해 마당놀이가 열린 것은 국립극장이 전력으로 설득 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이미 티켓이 상당히 팔린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어떻게 공연 취소를 납득시키겠나”면서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박근형 연출의 앙상블 시나위 공연이 취소된 뒤 예술가들이 시위를 이어가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이 점을 문체부에 상기시키며 마당놀이가 취소될 경우 훨씬 심각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손 전 감독의 측근은 “1980년대 군부 독재정권 시절에도 공연했던 마당놀이를 요즘 시대에 취소하라는 압력을 받은 뒤 국립극장 간부들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느라 고생했다”고 전했다.

손 전 감독이 이끄는 극단 미추가 1981년 첫 선을 보인 마당놀이는 잘 알려진 고전을 날선 풍자와 해학으로 재해석한 뒤 춤 노래와 함께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2010년 김성녀 윤문식 김종엽 등 1세대 배우들의 퇴장과 함께 30주년을 끝으로 중단됐다가 2014년 ‘심청이 온다’부터 국립극장 레퍼토리로 부활했다.

하지만 지난해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의 경우 다른 작품과 비교해 유난히 풍자와 해학이 적었다. 이 때문에 마당놀이가 극장에 들어오면서 특유의 야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올해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는 최순실 게이트를 빗댄 각종 풍자와 패러디로 넘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지난해 마당놀이는 취소 압력을 받은 상황이라 전체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손 전 감독의 측근 역시 “감독님은 마당놀이 때문에 국립극장에 피해가 갈까봐 굉장히 노심초사하셨다”고 전했다. 손 전 감독은 “이제 와서 ‘춘향이 온다’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 다만 외압 때문에 마당놀이의 풍자나 해학이 줄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 당시 국립극장 통솔 업무를 맡고 있었던 우상일 문체부 예술국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다. 1년 전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병대 전통공연예술과장(현 한국문화원연합회 사무총장) 역시 “잘 모르는 사안”이라며 “김종덕 당시 장관이 (2월에) 관람했던 공연인데, (취소 압력은)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문체부의 압력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시를 내린 주체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