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돌지 않는다. 통화량은 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실물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돈맥경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의 통화량(M2·광의통화)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9% 증가한 2383조405억원(평잔)으로 집계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달의 요구불예금(예금주의 요구가 있을 때 언제든지 지급하는 예금) 잔액도 197조3188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5.6%나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 9월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19.6회로 뚝 떨어졌다. 이는 2005년 2월(18.1회) 이후 11년7개월 만에 최저치다. 예금회전율은 월간 예금지급액을 예금의 평균 잔액으로 나눈 수치다. 회전율이 낮으면 그만큼 은행에 맡긴 돈을 찾아가지 않음을 의미한다.
통화유통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 올 3분기 0.69를 기록했다. 통화유통 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통화량으로 나눈 값이다. 통화량이 늘었는데도 통화유통 속도가 떨어지면 경기부양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경제 활력을 잃고 있음을 뜻한다. 2006년 0.90 수준이던 통화유통 속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0.7대로 떨어진 뒤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뭉칫돈은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한 단기 금융상품에만 몰리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진 영향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52조9211억원, 머니마켓펀드(MMF) 잔액은 120조149억원에 이르렀다. 173조원이 사실상 부동자금(浮動資金)인 것이다. CMA와 MMF 모두 수시입출금이 가능하고 수익률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거나 불확실성이 클 때 돈이 몰린다.
CMA 잔액은 지난 6일 역대 최고인 53조2851억원에 이른 뒤 일부 유출입이 발생하고 있지만 53조원가량을 유지하는 중이다. MMF 잔액은 지난 1일 117조5481억원에서 7일 126조781억원까지 늘었다가 소폭 감소했다.
가계, 기업 모두 소비나 투자보다 자금을 단기상품 등에 넣어두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침체가 예상되기 때문에 예금과 같은 단기자금으로 돈이 몰리는 것이다. 다른 투자 수단에서 거둘 수 있는 수익률이 높지 않아서 예금이나 단기 금융상품의 실질수익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경기 침체가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기획] 통화량 사상최대인데… 은행에 고이기만 하는 돈
입력 2016-12-13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