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경상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첫 확진 후 한 달도 안 돼 살처분 가금류가 10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정부는 12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AI 방역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해 대응책을 강화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 공백으로 초기 방역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상황에서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13일 0시를 기해 48시간 전국에 가금류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스틸)을 발령했다. 전국적인 스탠드스틸 발령은 지난달 26일에 이어 두 번째다. 적용 대상은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에 등록된 농장, 도축장, 사료공장 등 8만9000곳이다.
또 농림축산식품부 내 설치된 AI 방역대책본부를 확대 개편해 범정부 지원반을 설치할 계획이다. 스탠드스틸 발령에 맞춰 전국 닭·오리 농가에 대한 일제소독도 실시한다.
정부가 대응을 강화한 것은 사상 최악의 AI 피해가 예상될 정도로 확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첫 확진 농가가 나온 후 살처분 가금류는 1000만 마리를 돌파했다. 이는 예전 가장 피해가 컸던 2014년 겨울보다 속도가 빠른 것이다. 당시는 6개월 넘게 1396만 마리가 살처분됐는데 이번에는 한 달도 안 돼 그때를 육박하고 있다.
농식품부도 빠른 전파속도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농식품부 김경규 식품산업정책실장은 “2014년 AI와 비교했을 때 같은 기간 발생건수가 배 이상 많다”면서 “고병원성으로 전염력도 강해 감염 가금류의 폐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는 AI 확산 원인을 고병원성 바이러스 탓으로 돌리지만 국정 공백으로 방역 ‘골든타임’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유행하는 H5N6형 바이러스는 기존 H5N8형보다 더 독하고 확산속도가 빠른 것으로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 지난 10월 28일 충남 천안시 봉강천 일원에서 수거한 야생조류 분변에서 H5N6형이 검출됐고, 이어 지난달 10일 전북 익산시 만경강 야생조류에서 동일한 바이러스가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그보다 늦은 지난달 11일에야 가축방역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시도지사 회의를 열었다. 거점소독시설 21곳을 설치한 것은 첫 확진 판정이 나온 지 3일 뒤인 같은 달 19일이었다. 정부의 뒤늦은 방역 대처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지난달 초라도 초동 방역이 이뤄졌더라면 이렇게 전국적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매년 겨울철 반복되는 AI에 정부가 또다시 안이한 대처로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차량 등을 통한 인근 농가 간 전파는 있었지만 아직 농가 간 수평 전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며 확산세가 한층 꺾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파 속도 등을 감안하면 연말까지는 급속히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AI 1000만 마리 살처분… 닭·오리농가만 ‘죽을 맛’
입력 2016-12-12 18:24 수정 2016-12-12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