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한국경제, 성장우선주의 버려라 (하)] 경제, 정치와 분리… 코리아 디스카운트 막아라

입력 2016-12-12 18:02 수정 2016-12-12 21:25



한국경제가 내우외환에 휩싸였다. 미국 금리 인상 전망에 가계부채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 ‘트럼플레이션’(트럼프발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보호주의 확대 움직임에 통상과 금융 부문에 경고등이 켜졌다. 여기에 탄핵 정국은 경제주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대내외 3대 악재가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근원이 깊은 병이다.

소득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은 상승했다. 그러나 자산 가격 상승이 소비와 성장률 상승을 이끄는 ‘부(富)의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부의 효과는 서울 강남에 집을 갖고 있는 극소수 고소득층에 한정됐다. 뒤늦게 정부 말을 믿고 빚내서 집을 산 중산층 이하 국민들은 빚의 공포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 등 가계부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LTV·DTI 규제를 강화해 신규 가계부채 증가를 막을 수 있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가계 빚은 금리 인상과 맞물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등 단기 해법에 더해 근본적으로 가계부채를 감당할 ‘튼튼한 가계’가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성장의 과실에 가계는 소외됐다. 국민총소득(GNI) 중 가계가 갖고 가는 비중은 2000년 69%였지만 2012년 62%로 떨어졌다. 정부가 재정 확대를 통한 복지 증대와 기업에 임금 상승을 압박하는 정책으로 가계소득을 늘리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12일 “지금이라도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임금 안 올려주는 기업 핑계 대지 말고 최저임금 인상, 저소득층 직접적 복지 지원 강화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고 말했다.

내수

수출 위주 성장을 꾀한 한국은 선진국의 통상정책과 환율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측은 노골적으로 보호무역주의와 환율 조작 감시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수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한국 수출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계기로 한국경제의 체질을 수출보다 내수 위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계소득 증대→소비 확대→내수 활성화→기업 매출 증가→잠재성장률 상승’이라는 기존과 다른 성장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양대 경제학과 하준경 교수는 “우리 경제는 지금까지 대외무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있었다”면서 “무역은 기본적으로 ‘주고받기’ 게임인 만큼 우리 경제 구조 안에서 돌파구를 찾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산업경쟁력 강화도 필수적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 13개의 세계시장 점유 비중은 2011년 이후 뒷걸음질치고 있다. 혁신적인 수출품목 개발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연세대 경제학부 김정식 교수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대미 수출의 중간 역할을 한 중국과의 중간재 무역이 감소할 것”이라며 “한국과 미국의 주력 산업이 중복되는 상황에서 기술력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상품과 산업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정경분리

탄핵 정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미 정치적으로 한국의 대외 신인도는 바닥난 상태다. 문제는 경제 쪽으로 전염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의 정치적 혼란을 이유로 일본은 사실상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을 시사했고,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기업 옥죄기에 나섰다. 자칫 미 금리 인상으로 국내에 들어온 글로벌 투자자금 유출이 본격화될 경우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현 상황에서 가장 급한 것은 정치와 경제 사이에 높은 가로막을 치는 일이다. 인하대 경제학부 정인교 교수는 “정치권이 경제 전권을 경제 컨트롤타워에 넘기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기업이 투자를 하고 외국인투자자들도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