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부산에 살던 소녀는 배구를 하기 위해 혼자 낯선 서울로 올라왔다. 학창시절에 배구를 했던 소녀의 부모는 딸의 배구 DNA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서울 유학을 결정한 것이다. 명문 서울가락초 배구부에 들어간 소녀는 일신여중 배구부 합숙소에서 언니들과 함께 생활했다. 또래 친구도 없이 외로웠던 소녀는 밤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울곤 했다. 엄격한 합숙소 생활로 부산 집에는 명절 등 1년에 3번 정도밖에 내려가지 못했다. “배구 유학이 외롭고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왜 어린 나를 홀로 서울로 보냈나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지만 배구가 내 운명이란 사실을 곧 깨달았어요.”
10여년이 지나 소녀는 이제 명품 토스로 코트를 주름잡으며 엄격했던 부모님의 입가에 미소를 안겨주고 있다. 프로 6년차인 흥국생명 세터 조송화(23)는 12일 현재 세트당 평균 13.10개의 세트를 성공시켜 1위를 달리고 있다. 조송화가 신바람을 내니 흥국생명도 9승3패(승점 26)로 1위에 올라 있다.
조송화는 원래 레프트 공격수였다. 일신여중 3학년 때까지 팀에서 주포로 활약했다. “일신여상 1학년 때 감독님의 권유로 포지션을 세터로 바꿨어요. 키 성장이 멈춰 버려 공격수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신 거죠.” 공격수 시절 토스에 젬병이었던 조송화는 뒤늦게 세터로 전향한 뒤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타고난 근성과 노력으로 수준급 세터로 거듭났다.
조송화는 지난 두 시즌 연속 세트 부문 3위에 그쳤다. 하지만 조송화는 이번 시즌 1인자로 부상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팀 동료 공격수들이 잘해 준 덕분입니다. 토스가 좋지 않아도 잘 때려 주니 오히려 제가 고맙죠.” 조송화는 겸손했다.
조송화의 꿈은 한국 여자배구의 명세터 계보를 잇는 것이다. 이도희-이수정-강혜미로 이어지던 명세터 계보는 끊어진 지 오래다. 2006-2007 시즌부터 특급 외국인 공격수들이 등장해 공격 전술이 단순화된 탓이다. 한국인 세터들은 외국인 공격수의 스파이크를 위한 토스라는 단순 패턴에 길들여지면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도입된 트라이아웃 제도로 외국인 선수의 수준이 하향 평준화돼 세터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조송화도 이런 흐름을 잘 알고 있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고 하잖아요. 더 좋은 세터가 되기 위해 팀 훈련이 끝난 뒤 개별적으로 연구도 하고 고민도 하고 있어요.”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조송화에 대해 “지난 시즌엔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아 고생했는데 이번 시즌엔 부상에서 벗어나 자신감이 많이 올라온 것 같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끝까지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조송화는 이번 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획득한다. 하지만 지금은 ‘FA 대박’보다 팀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며 5년 만에 ‘봄 배구’에 나섰다. 하지만 현대건설과의 플레이오프에서 2패를 당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다.
조송화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너무 안타깝게 졌다”며 “이번 시즌엔 결코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고의 배구선수가 되겠다는 눈물 많던 유학소녀의 꿈은 코트 위에서 현실이 돼가고 있다.
인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배구는 세터놀음!… 제대로 노는 조송화
입력 2016-12-13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