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논쟁]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입력 2016-12-14 04:01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근거해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키로 함에 따라 지난달 28일 국정 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제시했지만 학계와 정치권의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에 바탕을 두고 있어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헌법적 가치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행 역사 교과서는 자학적 역사관이 강해 민족적 정체성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반대론자들은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려는 근본적 이유는 친일 역사를 왜곡해 보수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군사독재 시대를 미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즉 ‘국정 교과서=역사 왜곡 교과서’로 규정하고 당장 폐기돼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정 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제시하고, 23일까지 국민 여론을 수렴 중인 정부는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채택한다는 당초 계획이었지만 찬반 입장이 워낙 강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나아가 이 문제는 또다시 보수와 진보의 소모적 진영다툼으로 이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무엇인지 양 진영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본다.

박현동 논설위원, 삽화=이은지 기자

■이래서 찬성 - 김철홍(장신대 교수) 국민대통합위원회 화해와상생포럼 위원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교과서 국민의 보편적 역사 이해에 부합


“국정 교과서냐, 아니면 검인정 교과서냐?” 이 질문에 답할 때 우리는 먼저 대한민국 헌법이 지지하는 정치 사회 이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헌법적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제도다. 1919년 임시정부 헌법부터 1987년 헌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삼권분립과 대통령중심제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내가 자유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유 경쟁을 전제로 한 검인정 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는 현재 사용 중인 검인정 교과서가 유물론적 역사관에 근거한 개념들을 동원해 근현대사를 조명하기 때문이다. 유물론적 역사관은 공산주의 이념의 역사관이고 이런 역사교육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주기 때문이다. 즉 “국정 교과서냐 아니면 검인정 교과서냐”라는 질문은 “헌법적 가치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이념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번에 공개된 국정 교과서는 대한민국 헌법의 이념을 지지하는 대다수 국민의 보편적 역사 이해에 매우 근접한 교과서라고 판단된다.

검인정 교과서들은 해방 전후 공간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폄하하기 위해 그가 분단의 원인인 것처럼 가르친다. 그가 1946년 6월 정읍에서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라고 말한 것을 비판하며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만이 통일을 위한 올바른 길이라고 기술한다. 그러나 이 책들은 그해 2월 이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조직됨에 따라 현실적으로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통일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한에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이승만의 판단은 매우 현실적이고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지 않고 방치했다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이승만의 결정을 비난하는 사람들 주장은 마치 “왜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웠느냐”는 비난처럼 들린다. 통일이 중요해도 통일은 자유보다 더 귀중한 가치가 아니다. 자유가 있어야 정의도 있고, 자유가 있어야 평등도 있고, 자유가 있는 통일이라야 통일이다. 내가 새로 나온 국정 교과서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 책이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미래의 자유통일 한국의 시민들을 양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교과서 373쪽은 1946년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실시한 토지개혁에 대해 “농민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고 기술한다. 또한 남한의 토지개혁은 “유상매입, 유상분배”로 묘사하여 북한의 토지개혁이 더 우월한 것처럼 묘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책은 북한이 개인의 사적 소유제를 폐지하고 토지를 국유화했으며, 농민들에게 나누어준 것은 경작권에 불과하다는 것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다행히 국정 교과서는 북한이 개인의 사적 재산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체제이며, 남한은 사적 소유제에 입각한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채택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제 어떤 교과서를 사용해야 할지는 매우 분명하다.

1948년 정부수립이냐 혹은 건국절이냐에 관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므로 집필진이 지혜롭게 판단하길 바란다. 분명한 것은 1919년 헌법의 내용을 계승한 것은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지 같은 해 9월 발표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건국절 논쟁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 내부의 표현방식을 둘러싼 논쟁일 뿐이다. 지금은 양쪽 다 지나친 주장을 삼가는 것이 옳다.



■이래서 반대 - 한상권(덕성여대 교수) 교과서국정화저지 네트워크 상임대표
식민사관 따른 역사왜곡 교과서, 역사적 사실·헌법정신마저 위배


국회가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34명, 반대 56명으로 가결했다. 국민의 80%가 대통령 탄핵은 물론 ‘강제수사’까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니 탄핵 의결은 당연하다 하겠다. 향후 촛불민심을 받들어 박근혜정부의 각종 적폐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하는데 국정 역사 교과서도 그 대상 가운데 하나다.

지난 11월 28일 교육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헌법가치에 충실한 균형 잡힌 ‘올바른’ 대한민국 교과서를 개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역사학계는 ①기초적인 사실조차 오류를 보여주는 사례가 부지기수이고 ②폐기된 학설에 바탕을 둔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③학계에서 전혀 검증받지 못한 주장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단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역사적 진실과 괴리된 결코 ‘올바르지 못한’ 국정 교과서를 즉각 폐기할 것을 촉구하였다.

더 심각한 점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서술 내용인데,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교육부는 보도자료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기존 검정 교과서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로잡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난 10여년간 특정 세력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1948년은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는 이른바 ‘건국절’ 주장을 교과서에 반영한 것이다.

역사학계는 이러한 주장이 ‘역사 사실’은 물론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점을 누누이 밝혀 왔다. 역사학계는 1919년 3·1운동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그에 따라 대한민국이 건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전통 위에서 성립·발전한 나라라는 입장이다. 이번에 공개한 국정 교과서 현장검토본 사진(250쪽)에도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으로 되어 있다. 교육부의 주장처럼 ‘대한민국 건국 국민축하식’이라고 쓰여 있지 않다.

역사학계의 주장은 헌법정신에도 부합된다.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임을 밝힌 것이다.

만약 국정 교과서처럼 1948년을 건국의 해로 잡으면 대한민국은 연합국 즉 다른 강대국들이 해방시켜주고 그 덕분에 나라를 세운 타율적인 국가밖에 되지 않는다. 국정 교과서의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주장은 항일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폄하하고 친일파를 건국공로자로 역사세탁하는 한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려는 것이다. 식민사관에 입각한 역사 기술은 또 다른 형태의 역사왜곡으로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려는 반헌법적인 ‘역사 쿠데타’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대한민국 건국을 1919년이 아닌 1948년 8월 15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여론조사기관에서 건국시점에 대한 국민인식을 조사한 결과,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는 응답이 63.9%로, ‘남한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라는 응답(21.0%)의 3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세워진 나라임은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반헌법적인 역사관을 담은 국정 교과서를 편찬하고, 이를 국가정통성 확립을 위한 노력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어떤 세력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려 하는가. 기본사실조차 틀리고 헌법정신마저 부정하는 엉터리 국정 교과서를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