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11일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해 확고한 안보태세 유지를 주문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 자리에서 “작은 개미구멍이 둑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장관이던 2014년 11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마지막 변론에서 한 말을 다시 인용하며 외교안보 안정적 관리에 중점을 뒀다.
황 권한대행의 행보는 2004년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초기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고 전 권한대행은 국방·외교·치안 분야를 먼저 다잡은 후 경제 등 민생 안정에 주력했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이 이후에도 ‘고건 전철’을 밟을지는 미지수다.
정치권과의 긴장을 최소화하며 현상유지의 선을 넘지 않았던 고 전 권한대행과 달리 황 권한대행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대선 ‘대안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권한대행의 직무범위를 둘러싼 해석이 현상유지에 맞춰진다는 점에서 황 권한대행 역시 고 전 권한대행과 마찬가지로 관리형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탄핵 반대 여론이 높고,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이 높았던 2004년 탄핵 당시와 현 상황은 다르다는 점이다. 고 전 권한대행의 경우 참여정부가 진행했던 정책의 큰 틀을 유지한 채 돌발 상황에 대비하면 됐다. ‘탄핵 역풍’에 기세가 꺾인 야당의 협조도 있었다. 정치권과 긴장이 고조됐던 사안도 ‘사면법 개정안’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반면 황 권한대행의 경우 박근혜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현 정부에서 추진해온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역사 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등에서 야당이 정책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정책에 힘을 실어줘야 할 여당 역시 탄핵소추안 가결안 투표에서 보듯 분당 직전 상태다.
초대 법무부 장관에서 국무총리까지 박근혜 정부 정책을 체화해온 황 권한대행 입장에선 기존 입장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황 권한대행은 사드 문제와 관련해 지난 7월 국회에서 “(포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나”고 발언했다. GSOMIA,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시 총리 시절 논의해왔던 현안들이다. 검찰 내 대표적 ‘공안통’ 중 한 명으로 보수적 가치를 견지해왔다는 점도 기존 정책에 대한 입장 변화를 어렵게 할 수 있다.
권한대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주요한 국내외 현안도 쌓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권과 파열음이 커질 수 있는 선택의 순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변수는 황 권한대행의 성적표다. 야권과의 갈등, 청와대와의 조율, 국가 현안에 대한 무리 없는 관리가 이뤄질 경우 황 권한대행의 주가는 높아질 수 있다. 반면 권한대행으로서의 조율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소신을 이유로 한 갈등 상황이 계속되면 정치권의 반발로 대행체제가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경직된 대야(對野) 관계 태도를 유지할 경우 국회와 긴장이 고조돼 조기 퇴진 논란에 부닥칠 수도 있다. 다만 당분간은 황 권한대행이 자신의 목소리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경청해 최대한 국정에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거리의 목소리가 현재의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으로 승화되도록” 등의 표현을 쓴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황교안 대행, 관리만 할까 자기 목소리 낼까
입력 2016-12-12 0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