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멜로 도전? 50대 중년, 내 모습이길래”[인터뷰]

입력 2016-12-13 00:02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중년의 순정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 그는 “첫사랑을 떠올리며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행운아”라며 “난 그때의 내 모습이 싫다. 얼마나 서툴고 바보 같았나”라고 웃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석의 극 중 모습. 위부터 30년지기 태호(김상호)와 대화하는 장면, 과거로 돌아가 첫사랑(채서진)을 바라보는 장면, 30년 전 자신(변요한)을 마주한 장면.
“야. 4885. 너지?”

영화 ‘추격자’(2008)에서 연쇄살인범(하정우)을 쫓던 그의 날선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악질 도박꾼으로 나온 ‘타짜’(2006), 인정사정없는 살인청부업자로 변신한 ‘황해’(2010)에선 또 어땠나. 배우 김윤석(48)의 연기는 보통 ‘카리스마’ ‘강렬함’ ‘폭발적’ 등의 말로 수식된다.

14일 개봉하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다르다.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첫사랑(채서진)을 잊지 못한 남자(김윤석)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 덕분에 30년 전 자신(변요한)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김윤석의 얼굴이 신선하고도 반갑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은 “멜로 장르지만 억지 신파가 없어서 마음에 들었다”며 “치정이나 불륜이 안 들어간 중년 멜로가 나오기 어렵지 않나. 이정도로 담백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건 귀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남녀 사랑만이 아니라 우정과 부녀관계에 대해서도 다뤄요. 50대의 남자가 자기 인생을 반추하는 이야기라서 좋았던 것 같아요. 나도 이제 곧 그 나이가 되니까요(웃음). 딱 내 모습이더라고요.”

세계적인 인기작가 기욤 뮈소가 자신의 작품 영화화를 허락한 건 처음이다. 각색된 시나리오가 만족스러웠던 데다 칸영화제 초청작 ‘추격자’에서 인상 깊게 본 김윤석이 캐스팅됐기 때문이다.

“제가 판권을 사는 데 2% 정도라도 일조했다니 기쁘죠. 다만 기욤 뮈소가 내 팬이라는 건 오버인 것 같아요. 아마 그 사람이 아는 한국배우가 하정우하고 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데(웃음).”

김윤석은 ‘남남(男男) 케미’가 좋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전작에서 유아인 강동원 여진구 등과 훌륭한 합을 만들어냈다. “나와 함께 해서 그 친구들이 주목받은 게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겸손해하던 그는 이내 “내게 신비의 알약이 있나 보다. 아직 몇 개 남아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 작품에서 2인1역을 소화한 변요한에 대해서는 “나처럼 연극을 했던 친구라 즉흥적인 연기를 잘 하더라. 계산된 느낌이 없어서 잘 맞았다. 그 나이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용기”라고 칭찬했다.

이번에 김윤석이 멜로보다 애정을 쏟은 것은 딸(박혜수)과의 관계였다. 두 딸의 아빠인 실제 본인 모습이 많이 투영돼 표현하기 수월했다. 그래서인지 연기가 편안해 보인다.

“집에서 하는 행동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딸이랑 음식 만들어 먹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저를 힐링시키는 것 같아요.”

김윤석의 20대는 연극밖에 모르던 시절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연극 동아리 ‘극예술연구회’ 단원들의 연습을 보고 단번에 매료됐다. 그의 인생이 뒤바뀐 순간이었다.

연극무대가 그립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무대에 서려면 얼마나 많은 훈련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쉽게 말하긴 어렵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연극을 향한 그의 애정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모든 예술의 기초가 연극이라고 하는데, 요즘 뮤지컬에 많이 밀리고 있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하지만 연극하는 사람들은 씩씩해요. ‘걱정 마. 우리 안 죽어. 우린 50만원 가지고도 작품 하나 만들어’라고 말하는 패기가 있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