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바로세우기’ 이제 시작이다

입력 2016-12-11 17:47 수정 2016-12-11 21:30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가 11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강남으로 출근하고 있다(왼쪽 사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넘겨받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도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휴일임에도 일을 하러 나온 두 사람의 역할이 주목된다. 곽경근 선임기자, 윤성호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출발점에 섰다. 통치권력 부재를 우려하거나 박 대통령 탄핵에 환호하기보다 민의(民意)라는 진정한 리더십을 토대로 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시험의 시기다. 구시대적 권력이 훼손한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기도 하다.

각계 원로들은 이제는 미래를 위한 국민적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줘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특정 개인의 국정농단과 이를 공모한 통치권력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로 발현됐다면, 이제는 헌법과 민의에 기초한 새로운 대한민국호(號)를 다시 출항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한 번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는 정치권과 정부는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안보위기 등 국가적 불안요소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11일 “이 나라를 전면 재건설하는 제2의 건국에 가까운 심정으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치권을 향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치(公治), 여야가 함께하는 협치(協治), 국민의 뜻을 받드는 민치(民治)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치권은 물론 범국민적 협력과 합의를 통해 현안을 조율하고 갈등을 극복하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치권이 각자 이해관계에 매몰돼 또다시 갈등과 반목, 대치를 반복한다면 우리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권철현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 퇴진과 최순실 일당을 감옥에 넣는 것으로 끝난다면 우리 역사에 상처와 오욕만 남게 된다”며 “국가비상회의를 만들어 새로운 리더십을 형성할 인물을 찾아내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태정치를 답습하는 낡은 세력과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도 “대통령 개인의 일탈보다 권력 오남용을 통제하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심도 있는 개헌 논의를 시작해 국가 틀을 뜯어고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개월간의 국정 공백과 정국 혼란 속에 커져만 가는 경제위기 관리를 위해선 정부가 적극적인 위기 타개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현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직접 주도해 왔던 유일의 컨트롤타워 청와대가 무너진 지금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의 정책 대응 중요성이 커졌다. 2004년 카드대란 당시 관치금융 논란에 대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발언에 빗대자면, 이번엔 ‘제대로 된 관치’가 필요한 때라는 의미다.

당장 이달 말 발표될 2017년도 경제정책 방향에서 경제위기 논란을 잠재우고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위축 심리를 개선시킬 대안 마련도 절실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까지 경기를 지탱해준 건설투자도 한계에 다다랐고, 미국의 금리 인상 등 대외 불안요인이 산적했다”며 “해결책은 재정확대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정부 내에서도 정치적 희망을 담은 ‘장밋빛’ 경제전망 관행에서 탈피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현실화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적극적 정책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6개월 시한부 경제정책 방향으로는 현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며 “경제부처가 청와대 하청업체라는 오명을 씻을 기회이기도 하다”고 했다.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뒤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지난 10일 열린 7차 주말 촛불집회엔 서울 80만명, 지방 24만명 등 전국에서 104만명(경찰 추산 16만6000명)이 모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 시즌2’가 시작된 것이다. 시민들은 ‘노동개악 중단’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등을 주장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1일 논평을 통해 “우리에게는 사회를 바로잡아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며 “광장을 지켜나갈 촛불은 굳세고 담담하게 이어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글=남혁상 전웅빈 이성규 윤성민 기자 imung@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