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빨리”… 헌재, 다른 사건 제쳐놓고 집중 심리

입력 2016-12-12 04:08
강일원 헌법 재판관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주심 재판관인 강 재판관은 전날 오후 이탈리아 출장에서 급히 돌아와 헌재로 바로 출근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사건번호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심리에 착수한 헌법재판소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속도를 내고 있다. 주말에도 박한철(63·사법연수원 13기) 헌재소장과 주심(主審) 강일원(57·14기) 재판관 등 대부분 재판관이 출근해 기록을 검토했다. 세계 헌법재판기관협의체인 이탈리아 베니스위원회에 참석 중이던 강 재판관은 지난 10일 서둘러 귀국하며 “국민들께서 결론을 궁금해 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기록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의 잰걸음은 다른 곳에서도 드러난다. 헌재는 지난 9일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탄핵소추의결서 정본을 접수한 뒤 1시간여 만인 오후 7시20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 인편 송달을 완료했다. 박 대통령에게는 단 7일의 말미를 부여, 16일까지 답변서를 작성해 제출토록 했다. 헌재는 당분간 다른 사건의 심리들을 중단하고 대통령 파면 여부 결정에 역량을 집중한다.

검사 권성동, 피고인 박근혜

강 재판관의 총괄하에 펼쳐질 탄핵심판은 형사소송 재판과 비슷한 꼴로 진행된다. 권 위원장이 국회를 대표해 소추위원으로서 심리에 참여하는데, 범죄자의 단죄를 요구하는 검사의 역할이다. 반대로 박 대통령은 검찰에 의해 법정에 서는 피고인과 같은 입장에 놓여 있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권 위원장은 지난 9일 탄핵소추의결서를 헌재에 제출한 뒤 “여당 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면서도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심리의 당사자로서 변론을 진행할 박 대통령은 헌법 전문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변호인단을 강화하고 있다. 우선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인 채명성(38·36기) 변호사가 합류했다. 변호인단은 박 대통령의 공모 혐의가 적시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공소사실이 아직 법원에서 확정되지 않은 점 등을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헌재의 공개변론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었을 때도 검찰의 조사 요청을 거부했던 점,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헌재의 소환 시도에 응하지 않았던 점 등이 이 같은 관측의 근거다.

단판승부 최종심… 읽고 또 읽는다

주심인 강 재판관은 형사소송에서 법원의 판사와 같은 역할로서 탄핵심판에 임한다. 그는 귀국길에 “이 사건의 의미와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헌재가 바르고 옳은 결론을 빨리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무작위 전자배당에 따라 주심이 된 그는 헌재 재판관 9인 가운데 유일하게 여야 합의로 추천된 인물이다. 정치적 성향도 중도로 분류된다.

헌재의 심리가 법원의 재판과 완전히 같은 건 아니다. 권 위원장은 “탄핵심판은 유무죄를 가리는 게 아니다”며 “객관적 사실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행위인가를 판단하는 절차”라고 말했다. 전례에 비춰보면 헌재 재판관들은 매우 다양한 사실과 의견들을 폭넓게 검토한다. 판결이 이뤄지기 전인 검찰 공소사실과 특검의 수사내용, 국회 국정조사 결과, 각계의 의견서와 심지어 여론조사 결과까지도 참고된다.

헌재는 12일 재판관회의를 다시 열고 심리절차를 논의한다. 정치권 등의 예단과 압력을 우려, 논의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할 방침이다. 또 2004년의 선례처럼 헌법연구관 다수로 구성된 전담연구반을 편성해 해외 탄핵사례와 판례, 국정농단 사태의 여러 사실관계들을 수집·연구할 계획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