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을 파헤친 검찰 수사가 11일 막을 내렸다. 최초 고발장 접수부터 73일, 특별수사본부 설치 이후 45일 만이다. 전반부의 검찰은 수사 의지를 의심받을 정도로 소극적이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수사 강도를 높이더니 현직 대통령 피의자 입건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검찰을 변하도록 밀어붙인 건 광장의 촛불이었다.
여론 눈치 살폈던 檢
지난 9월 29일 최순실씨 의혹 관련 시민단체의 고발장이 접수됐을 때만 해도 검찰은 수동적이었다. 청와대는 “대응할 가치가 없는 음모”라고 가이드라인을 던졌다. 검찰 안팎에서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어렵다. 다음 정부에서나 칼을 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사건은 고발 6일이 지나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맡겨졌다. 11일 고발인 조사를 시작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실무자,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 등 참고인 조사가 진행됐다. 각종 의혹에 대한 기초적 사실관계 확인 단계였다.
수사팀 확대, 확대…특수본 가동
10월 24일 언론에 최순실씨가 2014년 3월까지 사용했던 태블릿PC 내용이 보도됐다. 검찰은 태블릿PC를 제출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날 “일부 연설문과 홍보물 표현 등에서 최씨의 도움을 받았다”며 첫 대국민 사과를 했다. 검찰은 26일 최씨 주거지, 미르·K스포츠재단 사무실 등을 시작으로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섰다. 29일과 30일에는 청와대에도 압수영장을 들고 진입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27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한 특별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했다. 검사 4명이었던 수사팀은 특수본 출범 이후 검사만 44명인 단일사건 최대 규모로 확장됐다.
촛불집회 본격화…질풍노도 검찰
10월 29일 2만명이 운집한 1차 촛불집회 이후 수사 기류는 또 한번 변한다. 바로 다음날 귀국한 최씨는 31일 검찰 소환 조사 도중 긴급체포됐다. “죽을죄를 지었다”던 최씨의 말은 그를 넘어 박 대통령까지 수사가 뻗어나갈 것을 알리는 전조였다. 20만명, 100만명, 200만명으로 커가는 촛불집회의 규모와 비례해 수사 강도도 올라갔다.
특수본은 지난달 13일 ‘대통령 대면조사 방침’을 공식화했다. 박 대통령 측이 조사 시점 연기 뜻을 밝히자, “최씨 등 기소 전에 대통령 조사가 꼭 이뤄져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대통령 조사는 못했지만, 검찰은 같은 달 20일 최씨 등을 기소하면서 대통령을 공범으로 명시했다. 동시에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검찰의 화려한 변신에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다리가 부러져 거동할 수 없게 된 사자에게 떼로 달려드는 하이에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꼬집기도 했다.
글=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그래픽=이은지 기자
‘촛불’에 놀란 檢, 수사 강도 높였다
입력 2016-12-12 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