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황교안 대행, 여·야·정 협의체 수용해 국회와 협치하라

입력 2016-12-11 18:37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11일 합동참모본부를 찾아 안보 태세를 점검했다. 탄핵안 가결 이후 연일 안보와 안정을 강조하는 행보는 ‘고건 매뉴얼’을 보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 고건 권한대행은 먼저 전군지휘경계령을 내려 안보를 챙기고 대국민 담화로 국민을 안심시킨 뒤 청와대가 아닌 총리실에 머물며 업무를 했다. 황 권한대행도 그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매뉴얼의 유용성은 여기까지다. 고 권한대행은 곧 복귀할 가능성이 큰 대통령을 기다리며 최소한의 일상 업무만 수행했다. 경제와 안보 상황도 나쁘지 않았고 기다리는 기간도 길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복귀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며 경제와 안보는 모두 위기이고 권한대행 업무는 정권이 바뀌어야 끝날 가능성이 크다. 고건 모델을 염두에 뒀다면 서둘러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이다. 선출된 대통령처럼 권한을 행사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법적 권한은 그에게 있지만 국정에 구현할 정치적 힘은 국회, 특히 야당이 갖고 있다. 야당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협력하지 않으면 뒤죽박죽 얽힌 국정의 실타래를 한 올도 풀 수 없다. 황 권한대행은 고건 매뉴얼을 넘어 국회와 협치를 실현해야 한다.

박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필두로 정치권에서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긴박하고 중요한 국정 현안을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논의해 결정할 컨트롤타워를 만들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도 같은 주장을 폈고,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역시 “국정 위기를 안정적으로 수습할 바람직한 구상”이라고 평가했다. 여·야·정 협의체는 지난 총선 민심이 주문했던 협치의 한 모델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금은 대통령이라는 축이 무너지고 여당 친박 지도부는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기존의 창구였던 당정협의가 제 구실을 할 수 없어 야당과의 협력은 훨씬 더 절박해졌다. 협의체는 황 권한대행이 먼저 제안했다면 국민이 대행체제에 큰 신임을 보냈을 만한 일이다. 모처럼 정파를 떠나 한목소리로 나온 국회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와 민생을 안정시키고 외교·안보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광장의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회와 권한대행 정부의 협력이 실현되려면 야당도 황 권한대행을 인정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헌법은 그에게 국정의 권한을 줬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초헌법적 발상이며 협의체를 제안한 취지와도 어긋난다.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정부의 총리가 아니라 정권 이양을 준비하는 사실상 과도정부의 책임자 입장에서 국회와 만나야 할 것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면 그렇게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