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서툴러 “답답”… 모국어로 고민 상담 “후련”

입력 2016-12-12 21:08
글로벌디아스포라 상담·코칭 전문가들이 최근 안산의 한 다문화센터에서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참석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글로벌디아스포라 제공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문화 가정 자녀들. 글로벌디아스포라 제공
중국인 A(33)씨는 지난 몇 년 동안 외모콤플렉스 때문에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서 그런지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는 느낌이 들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고 그런 자신이 너무 싫어 죽고만 싶었다. 한국어가 서툴러 이런 마음을 누군가에게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지난 3월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에서 중국 출신 상담자에게 모국어로 상담을 했다. 그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란 것을 깨닫게 됐다. 자신감을 회복하자 끊어졌던 친구관계도 회복됐다. 그가 타국에서 심리적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국어 상담의 힘이 컸다.

국내에는 많은 다문화가정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의하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00년 49만1000명에서 2007년 100만명을 돌파한 뒤 2016년에는 100만명이 더 늘어 200만명을 넘어섰다. 법무부는 지금 추세를 유지할 경우 5년 뒤인 2021년에는 300만명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정 통계자료에 의하면 다문화 가족 구성원수는 2015년 기준 약 82만여명(30만5000여 가구)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이 요구되는 가운데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는 2012년부터 교내의 외국인 학생은 물론 국제결혼 가정과 외국인 가정을 위한 상담을 제공해 왔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6개 언어로 상담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고 임상훈련과 상담을 했다.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는 지난 9월 유학생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상담 및 코칭 서비스 제공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글로벌디아스포라 다문화 코칭네트워크(이사장 권수영 연세대 교수·Global diaspora multicultural coaching network)’를 창립했다.

글로벌디아스포라는 다문화 시대의 목회적 돌봄이란 관점에서 사역활동을 벌인다. 자국어 무료 상담 및 코칭 서비스가 주요사역이며, 다문화 가족의 정서 지원, 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학습 및 진로 코칭, 다문화 가족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타국으로 결혼해 온 이주여성, 외국인노동자, 다문화 가정의 자녀 등은 깊은 고민이 있어도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힘들다. 통역을 통한 상담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족들이 한국어가 아닌, 자신들의 모국어로 상담 및 코칭지원을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권수영 교수는 “국내 국제결혼 가정과 이민자 가정이 문화적인 적응과 정착에 필요한 지원과 한국어가 아닌 모국어로 상담하는 심리지원 서비스 확충이 필요하다”며 “글로벌디아스포라는 다국어 상담사 및 코치를 양성해 다문화 가족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로 정서, 심리, 문화적응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된다”고 밝혔다. 코치는 사람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는 과정을 돕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이어 “전문적인 심리상담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코칭 훈련은 비교적 단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먼저 한국어가 익숙한 중국인들이나 베트남인 등을 전문 라이프 코치로 양성해 한국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을 돕는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이 교육을 통해 전문코치가 된 외국인이나 이주민들이 국내에 이주하거나 유학 온 자국민들을 직접 돕는 것이 이 단체의 목표이다.

글로벌디아스포라는 다국어로 진행되는 외국인 상담코칭 전문인력 양성에도 시동을 건다. 2017년 1월 9, 16, 23일 중국학생 및 중국인을 위한 ‘다문화 라이프 코치’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중국 이주민들의 자기역량 강화와 일상적인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처기술을 배운다. 강사는 권 교수, 장석연(다문화 상담코칭 전문가) 박사, 이명진(다움상담코칭센터 대표원장) 박사 등 상담·코칭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참여 자격은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유학생 또는 중국인 중 한국어로 수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해 필요시 통역도 제공된다. 교육은 무료로 진행된다.

한편 글로벌디아스포라는 15∼25일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갤러리 정에서 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를 연다. 앤디 워홀, 에릭 프라이스, 이우환, 강익중, 권옥연 등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