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올림머리’를 했던 것은 결혼식 때였다. 뜨거운 고데기로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마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드라이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러고는 컬이 잡힌 머리카락을 적당히 묶고, 안으로 고정시키기 위해 검은 실핀과 U자형 핀을 여러 개 꼽아야 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내 머리에 꼽은 핀을 뽑아보니 한 움큼이었다. 고정되라고 뿌린 딱딱한 헤어스프레이 때문에 머리를 감을 수 없고, 빨래처럼 빨아야 할 지경이었다.
그 후에도 동생들 결혼식에 한복을 입을 때, 그리고 아버지 칠순잔치에 한복을 입을 때 미장원에 가서 올림머리를 했다. 보통 올림머리를 하려면 두 시간은 걸렸고, 예약을 해두지 않으면 바쁜 미용실에서는 바로 해줄 수가 없었다. 남동생 결혼식 날엔 미리 예약을 안 해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가 올림머리를 하고 가게 되었다. 그래서 혼주의 가족으로는 너무나 민망하게 결혼식 직전 아슬아슬하게 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보통의 여자에게 올림머리란 특별한 날의 특별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어떤 한 분은 늘 자신의 모습이 비춰져야 해서인지 항상 올림머리였다. 정치인이 왜 굳이 올림머리를 하는지,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의아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올림머리는 그녀에겐 ‘유산’이고 ‘상징’이 아니었을까 싶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어머니 스타일. 그 시절,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았던 세대에게, 그 올림머리는 그분의 상징이고 우아함의 극치다. 그녀는 그 올림머리가 본인에게 잘 어울린다 생각했던가, 아니면 지지자들에게 전략적으로 먹히는 감성정치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 머리스타일을 고집한 것일까. 그러나 그런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날, 300여명이 탄 배가 가라앉는 사고가 난 그날, 한시바삐 인명을 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미용사를 불러 그 올림머리를 하고, 7시간 만에 나타나 했던 말이 요즘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올림머리는 특별한 날의 우아함이 아닌 ‘직무유기’ ‘바보스러움’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올림머리’의 불명예
입력 2016-12-11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