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경제 충격 위기감 고조… 정부, 비상 대응반 가동

입력 2016-12-10 00:06 수정 2016-12-10 00:34

한국경제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경제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대통령이 사라지면서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하지만 컨트롤타워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내정자(현재 금융위원장)가 ‘동거’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경제는 ‘심리’다. 커진 불확실성이 ‘금융시장 급변동’ ‘소비·투자 침체’를 불러오는 위기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시스템에 맡기라’고 지적한다. 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 위기대응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면서 시장과 경제주체(가계, 기업, 정부, 외국인)에 확고한 메시지를 줬던 전례를 따르라는 것이다.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한 9일 저녁, 정부의 경제부처들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유 부총리는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우리 경제가 한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비상한 각오로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 등 각 부처들은 시장 동향을 점검한데 이어 기존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곳곳에 ‘지뢰밭’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어둡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우리는 통상협상 테이블에 나설 사람이 없다. 최근 일본 아소 다로 부총리는 한국 측 대화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어 통화스와프 재개 협상을 이어갈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여기에다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국가경제를 위협한다. 수출은 2년 연속 1조 달러 달성에 실패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전망치)을 2.4%로 내려 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3.0%에서 2.6%로 낮췄고 해외 투자은행들도 2%대로 낮춰 잡았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위기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불확실성 심화로 소비·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봤다. 외교·안보 등 리스크 확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 8월 브라질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된 뒤 지방정부 재정난, 경기침체 등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는 탄핵 정국을 슬기롭게 돌파한 전력이 있다. 2004년 경제 컨트롤타워인 고건 총리와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충격 최소화’에 전력투구했다. 탄핵안 가결 당일 급락했던 코스피지수는 주말을 보내고 첫 거래일에서 반등했고, 추락했던 원화가치는 사흘 뒤 상승으로 전환했다. 한양대 하준경 경제학부 교수는 “2004년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 시스템이 잘 마련돼 극심한 위기 상황으로 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확고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불안과 공포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현재로는 황 총리와 유 부총리가 2004년의 ‘고건-이헌재팀’ 역할을 맡게 된다. 다만 황 총리는 야당이 권한대행을 맡기에 부적절하다고 지목해 적극적인 국정운영에 나서기 쉽지 않다. 유 부총리는 그동안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다 임 내정자는 권한과 입지가 확실치 않다.

이렇다 보니 정부 경제부처들은 소극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손톱 밑 가시’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던 규제개혁의 동력을 사실상 잃어버렸다. 고용노동부는 박근혜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였던 노동개혁 좌초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기재부가 오는 22일 발표할 예정인 ‘내년 경제정책 방향’이 표류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런 안팎의 분위기를 감안한 듯 경제 관련 부처는 국회의 탄핵안 가결이 있고 나서 곧바로 긴급 경제상황 점검회의에 들어갔다.

긴박하게 움직이는 정부

유 부총리는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부처별 대응방안 등을 논의한 뒤 기재부를 중심으로 관계기관 합동 비상경제대응반을 가동키로 했다. 국내외 금융시장과 수출·투자·고용 등 실물경제 동향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신속 대응키로 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와 해외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현재 상황 등을 설명한다. 10일엔 경제단체장들까지 불러 긴급 현안점검회의도 갖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긴급 간부회의를 갖고 앞으로 예상되는 금융·외환시장 및 실물경제 상황을 점검했다. 금융위는 13일까지 연쇄적으로 금융부문 점검회의를 열기로 했다.

산자부는 ‘4차 산업혁명 대비 방안’을 차질 없이 추진키로 했고, 국토교통부는 주택시장 등을 점검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추가 확산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는 11일 긴급 현안회의에서 해운산업 구조조정 등 정책 과제를 점검할 예정이다.

세종=서윤경 기자, 홍석호 나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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