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민의 ‘명예혁명’

입력 2016-12-09 18:20 수정 2016-12-09 21:45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집회를 하던 시민들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촛불을 든 시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시민의 힘에 밀린 국회가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결의했지만 부패권력뿐 아니라 부정부패, 정경유착 등 우리 사회의 고질병까지 몰아내라고 촛불은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최고권력자를 끌어내리도록 요구한 이번 촛불집회는 말 그대로 시민혁명이었다. 사회 전반에 시민의 목소리로 변화를 일으킬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김진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반영됨으로써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나가는 발판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 한국사회 변화의 주도세력은 시민이다. 성난 민심은 대통령을 헌법의 심판대에 세웠고, 국회의원에게 역사와 정의를 요구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코웃음 치던 정치인들은 입을 닫고 줄을 서서 탄핵소추 투표용지를 받아들었다. “국회는 탄핵하라”는 시민의 목소리가 여의도에 메아리쳤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들의 목소리, 촛불의 민심이라는 게 간단치 않다는 게 정치권에 전달됐을 것”이라며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적인 성취감을 느끼고,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대규모 집회를 폭력사태 없이 진행해 변화를 일궈냈다는 의미에서 명예혁명이기도 하다. 수백만명이 한꺼번에 몰렸지만 4차 집회 이후로는 연행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전 세계가 평화롭고 아름답기까지 한 촛불의 파도에 놀랐다.

권력의 치부를 광장으로 끌어내 비춘 촛불은 이제 횃불이 되어 한국사회 곳곳으로 번질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은 끝없이 추락한 정의,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불평등,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앙시앵 레짐(낡은 체제)에 대한 주체적인 거부가 담긴 탄핵”이라며 “경제성장을 위해선 정경유착, 독재체제, 인권탄압도 좋다는 박정희체제의 완전한 종막을 뜻하는 탄핵이자 불평등을 강화시킨 민주화의 역설, 제왕적 대통령제의 깊은 그늘이 담긴 87년 체제의 사실상의 종막을 함의하는 탄핵”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촛불은 계속 타오른다.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또다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다.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는 “탄핵소추안 가결과 관계없이 박 대통령은 즉시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를 향했던 촛불의 불길, 시민의 파도는 이제 국회와 사법부, 정경유착과 불평등을 심화시킨 경제구조, 생명의 가치를 저버린 사회 전반을 향한다. 이 뜨거운 물결에 모든 낡은 것은 가라앉고 새로운 희망이 뛰쳐나올 것이다. 이제 시민의 시대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