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힘… 친박도 돌려세웠다

입력 2016-12-09 18:23 수정 2016-12-09 21:14
정세균 국회의장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자리에 앉은 여야 의원들이 담담한 표정으로 정 의장을 바라보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234명 찬성’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숫자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81%·한국갤럽)을 반영한 국회 의석 ‘243석’(300명 중 81%)에 불과 9표 못 미쳤다. 새누리당이 의회권력 42%(128명)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결과로 판단된다.

232만명이 뛰쳐나온 광장의 촛불민심에 국회가 어느 정도 부응했다는 평가다. 여권에서는 새누리당 비주류의 단일대오가 확인됐고, 주류 친박(친박근혜)계 영향력의 붕괴가 현실화됐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 즉각 퇴진’ 요구도 비등(沸騰)할 수 있다.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이 주축인 당 비상시국위원회는 9일 당내 찬성표를 35명 정도로 예상했다. 더불어민주당 121명, 국민의당 38명, 정의당 6명과 무소속 7명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해도 207명에 불과하다. 본회의 표결 때 새누리당에서 62표가량의 찬성표가 나온 셈이다. 새누리당 범친박계와 중도지대에서 최소 27명 가까운 반란표가 쏟아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샤이 박근혜’는 사실상 없었다는 뜻이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271명 중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195명이 참석해 193명 찬성, 2명 반대로 가결됐다.

‘폐족 위기’를 우려한 친박계는 막판까지 탄핵안 부결을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탄핵소추안에 ‘세월호 7시간’ 대목이 포함됐던 것과 박 대통령 혐의가 밝혀진 게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촛불민심을 목도한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매주 규모를 키워가는 광장의 목소리를 받아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탄핵 찬성을 외치는 상황에서 반대표를 던질 경우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확산돼 보수가 궤멸할 수 있다는 우려다.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지지하는 여론도 100명 중 5명에 불과하다.

최근 국정조사 1, 2차 청문회에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 대통령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조와 특검이 이제 시작되는 상황에서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리려면 탄핵안을 가결시켜 헌법 유린을 바로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탄핵안 부결 시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을 계속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한계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박근혜 리스크’를 제거하지 못할 경우 대선에서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번 기회에 박 대통령이나 강성 친박계와의 관계를 청산해야 ‘보수 혁신’이나 ‘재창당’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 일부에서 전략적 반대표가 나왔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일 야권 일부에서 반대표가 나왔다면 친박계의 이탈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컸다는 계산도 나온다. 탄핵에 찬성하지 않은 친박계가 66명 이내로 당내 과반까지 쪼그라들었다는 뜻이다. 차마 반대표를 던지지 못한 온건 친박계는 기권하거나 무효표도 던졌다. 더불어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오전 원내에서 파악했던 찬성표도 220∼230표 내외였다”며 “우리 당이 예상했던 것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현재 상황을 더 엄중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도 “친박계까지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만큼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는 더 이상 힘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투표는 한글로 ‘가’ ‘부’를 적거나 한자로 ‘可’ ‘否’를 써야 하는데, 이번 무효표 7표 중 하나는 가에 동그라미를 했고, 다른 하나는 가 옆에 점 하나를 찍었고, 나머지는 가부를 같이 썼다고 한다. 백지를 제출한 사람도 2명 있었다.

글=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