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은 ‘축제의 촛불’ 광화문에 모인다

입력 2016-12-10 00:04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집회를 하던 시민들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시민들이 밝힌 촛불은 탄핵을 만든 주역이었다. 지난 10월 29일부터 시작된 6차례 대규모 주말 촛불집회는 청와대와 국회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5만명으로 시작한 촛불은 지난 3일 232만명까지 46배 넘게 몸집이 불어났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탄핵이 가결된 날까지도 국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촛불은 추운 날씨에도 한 달이 넘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외려 3차례 대통령 담화와 검찰 수사를 거치며 232만 횃불이 됐다. 시민 5만여명은 지난 10월 29일 촛불과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나왔다. 박 대통령이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을 작성하며 최순실씨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인정한 1분40초짜리 1차 담화에 실망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졌다.

2차 촛불집회에는 20여만명이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경찰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故)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겹치면서 촛불은 더 커졌다. 집회 전날 박 대통령은 2차 담화를 발표해 검찰 조사와 특별검사 수사를 받겠다고 했지만 성난 민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세 번째 집회에는 100만 시민이 몰렸다. 광화문과 청계천 시청 일대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정유라(20)씨 이화여대 특혜 입학에 분노한 청년층과 비선실세가 좌지우지한 문화융성 정책에 분노한 문화인, 보수층에 실망한 실버세대 등 각계각층의 분노가 들끓었다.

촛불은 4차 집회에서 전국 95만명으로 잠시 숨을 고른 뒤 5·6차 집회에서 폭발했다. 한파로 촛불이 주춤할 수도 있다는 전망과는 다르게 전국 190여만명이 5차 집회에 가세했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겠다고 말을 뒤집으면서 민심이 폭발할 결과다. 박 대통령은 집회 나흘 뒤 3차 담화를 발표해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긴다”며 국회로 공을 넘겼다.

사상 최대 규모인 232만명이 몰린 건 지난 3일 열린 6번째 촛불집회였다. 박 대통령이 3차 담화에서 책임을 국회로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다 국회가 탄핵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시민들이 직접 움직였다. 이날 시민 500여명은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으로 몰려가 “박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새누리당은 해체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집회가 이어질수록 촛불은 조금씩 청와대와 가까워졌다. 1·2차 집회에서 시민들은 광화문광장 주변에서만 행진했지만 3차 집회 땐 내자동로터리, 4·5차와 6차 집회 때는 청와대에서 각각 200m, 100m 떨어진 곳까지 행진했다. 9일 탄핵 표결을 앞두고선 촛불은 여의도까지 번졌다. 시민들은 7∼9일 사흘간 국회 앞에서 탄핵 가결을 압박하는 촛불을 들었다.

10일에도 광화문광장에서 7차 촛불집회가 열린다. 남정수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변인은 “탄핵은 국민들이 대통령에 내린 징계일 뿐 국민들이 원하는 건 박 대통령이 즉각 물러나는 것”이라며 “퇴진 때까지 촛불집회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글=오주환 임주언 기자 johnny@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