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뒤 성난 촛불 민심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내년부터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쓰도록 강행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의 “국민은 개돼지” 발언 파문보다 훨씬 큰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란 위기감도 감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9일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 직후 성명을 내고 “대통령 탄핵과 함께 박근혜정부가 모든 역사학자와 학교와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단적으로 강행한 대표 정책인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정책 또한 탄핵당했다”며 “교육부에는 국정화 정책의 즉시 철회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위한 ‘효도 교과서’를 즉시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 교육부도 ‘질서 있는 철회’를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박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 교과서와 관련해) 달라질 게 없다”면서도 “오는 23일까지 여론 수렴하는 기간이니 여러 의견을 청취하며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내부 분위기는 절박하다. 한 간부급 직원은 “촛불 집회 때는 국정 교과서 철회 목소리가 대통령 퇴진 요구에 가려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탄핵이 가결된 상황에서 국정화를 강행하면 촛불의 분노가 교육부로 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호의적인 책이란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며 “출구전략을 조속히 실행에 옮겨 부담을 줄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직원은 “이렇게 (교과서를) 써놓고 뭘 믿고 잘 만들었다고 장담했는지 알 수 없다. 촛불이 교육부 앞으로 오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내부에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왔다. 우선 국정 교과서 적용 시점을 1년 보류하고 차기 정부로 공을 넘기는 방식이 있다. 기존에 쓰던 검정 교과서를 1년 더 쓰면 된다. 국·검정 혼용 방식도 거론된다. 내년은 최신 교육과정(2015 개정)이 적용된 국정 교과서만 쓰게 한다. 1년 동안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검정 교과서를 최신 교육과정에 맞춰 업데이트하게 한다. 학교들이 2018년부터 국정과 검정을 선택하게 한다. 국정화 찬반 여론의 한가운데에 처한 교육부로선 모두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야당과 시·도교육감들은 탄핵 후 촛불 집회 등에서 국정화 철회 여론을 결집시키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런 움직임은 출구전략을 강하게 요구하는 교육부 내부 목소리와 상승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오는 12일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관하는 국정 교과서 토론회에 이목이 쏠린다. 국정 교과서 쟁점 중 하나인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논의한다. 교육부는 보수층 집결을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다.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은 황교안 국무총리 태도도 변수다. 공안검사 출신인 그는 지난해 11월 국정화 확정 발표 때 황우여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제치고 직접 브리핑에 나서 검정 교과서를 ‘종북’이라고 규정했다.
세종=이도경 기자, 이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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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열차에 치인 국정 교과서 ‘질서 있는 철회’?
입력 2016-12-09 17:48 수정 2016-12-09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