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결도 평화로웠다

입력 2016-12-09 18:24 수정 2016-12-09 21:15
정세균 국회의장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자리에 앉은 여야 의원들이 담담한 표정으로 정 의장을 바라보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읽어 내려가자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정면을 응시하다 이내 천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밝은 얼굴로 본회의장에 입장했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내 아랫배에 두 손을 모으고 무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9일 오후 3시부터 국회 본회의장에서 치러진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은 준엄한 촛불민심 아래 평화롭고 차분하며 엄숙하게 진행됐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몸싸움과 고성, 오열이 이어지며 국회의장 경호권까지 발동됐던 것과는 판이한 분위기였다. 다만 무거운 공기가 국회 본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투표가 임박하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기도하는 모습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의장석을 바라봤다. 우 원내대표는 본회의 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돼도 환호성을 지르거나 웃지 말라”며 “탄핵안은 정당사의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헌정사의 비통한 역사”라고 거듭 당부했다.

오후 3시23분 무기명 투표가 시작되자 의장석을 바라보고 오른쪽 투표함으로 민주당 추 대표와 우 원내대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처음으로 향했다. 왼쪽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섰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오후 3시46분 기표소에 입장한 뒤 1분 만에 환한 얼굴로 나왔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기표소 앞에서 ‘셀카’(셀프카메라)로 투표 ‘인증샷’을 찍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투표 내내 허탈한 표정이었다. 친박 민경욱 의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줄을 섰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검사’ 역을 맡을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법제사법위원장)은 투표용지를 한 손으로 흔들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투표 도중 본회의장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 한 참관인이 “박 대통령 부역자, 서청원 의원 소감을 말해 보라”며 고함을 쳤다. 같이 나온 친박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이 “어디다 대고 부역자란 말을 하느냐. 당신이 부역자다”며 고성으로 대거리를 했다.

오후 3시54분 개표가 시작됐다. 총 투표자 299명. 친박 최경환 의원만 투표에 불참했다. 민주당 추 대표는 초조한 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얼음처럼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다. 오후 4시2분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잠시 본회의장을 나갔다 들어와 정 원내대표에게 귀엣말을 했다. 정 원내대표는 다시 김광림 의원에게 말을 전했고, 이 대표도 의자를 빼 뒤를 돌아봤다. 친박인 김태흠 이장우 조원진 의원은 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무언가를 논의했다.

개봉된 투표함을 검표요원 등 약 15명이 에워쌌다. 잠시 후 민주당 전재수 오영훈 의원이 의원석을 향해 돌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국민의당 채 의원이 의원석을 향해 손가락 2개, 3개, 4개를 차례로 들어올렸다. 본회의장에 탄식이 새어 나왔다.

오후 4시10분 마침내 정 의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오후 3시3분 탄핵소추안을 상정한 지 67분 만이다. “와” 하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 국민이 승리한 날이었다.

글=강준구 고승혁 기자 eyes@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