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외교 사실상 ‘올 스톱’

입력 2016-12-09 17:48 수정 2016-12-09 21:31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외교·안보 정책도 사실상 ‘올 스톱’ 상태에 빠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외교 업무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으로서의 무게감은 대통령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외교 당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 소식통은 9일 “외교의 정점은 결국 대통령이 나서는 정상외교가 아니겠느냐”면서 “탄핵안 가결로 정상외교 일정을 잡는 건 당분간 불가능해졌다. 내년 업무계획 수립조차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현상 유지에 집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외교부는 전 재외공관에 전문을 보내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음을 주재국에 알리고 주재국과의 관계 발전에 계속 노력하라”고 지시했다. 또 미·중·일·러·유럽연합(EU) 등 주요국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탄핵과 관련한 국내 정세를 설명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미) 동맹은 앞으로도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상외교 공백으로 발생할 손실도 적지 않다. 우선 이달 말로 예정됐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사실상 무산 수순을 밟게 됐다. 3국 회의는 그동안 중국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별다른 진전 없이 답보 상태를 이어왔다. 여기에 박 대통령의 불참마저 확정되면서 중국이 3국 회의에 동참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내년 초 도널드 트럼프 신임 미국 행정부 출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물 건너갔다. 과거 우리 정부는 미국의 신행정부가 들어선 후 3∼4개월 안에 한·미 정상회담을 열어 양국 공조를 재확인해 왔다. 이번에는 탄핵심판과 신임 대통령 선거, 회담 의제 조율 등의 일정을 고려했을 때 일러도 내년 말에나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심경수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황 권한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는 건 논리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나라 입장에서도 황 권한대행과의 정상회담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에 대한 ‘흔들기’ 시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절차가 내년 초부터 본격화될 예정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사드 배치 결정을 번복하는 건 한·미동맹을 파기하자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