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3개월간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결론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끝났다. 박 대통령은 민간인 최순실씨와 함께 국정 체계를 흔들고 사익(私益)을 챙겼다는 소추사유로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게 됐다.
이번 사태는 지난 9월 20일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센터장’이라는 의혹 제기 등으로 촉발됐다. 사태 초기 의혹은 일사천리로 설립된 뒤 774억원을 대기업들로부터 끌어 모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초점이 맞춰졌다. 모금 과정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먼저 최씨 측근들의 베일이 벗겨졌다. 최씨 최측근이던 고영태씨는 K스포츠재단의 자금 통로로 활용된 더블루케이 전 이사였다. 고씨는 2014년 최씨와 싸운 후 변심, 최씨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 의혹 등을 폭로했다.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하며 미르재단과 박근혜정부의 문화사업을 주물렀던 차은택씨도 최씨로 향하는 의혹의 연결고리였다.
최씨 딸 정유라씨의 이대 부정입학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승마선수인 정씨는 대기업으로부터 승마용 말 구입비 등 거액의 지원을 받았다. 박관천 전 경정이 최씨 전 남편 정윤회씨 비선실세 의혹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 “우리나라 권력 서열은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라고 했던 말도 다시 회자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반전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이는 반나절 만에 최씨 태블릿PC에서 박 대통령의 연설문, 인사자료 등이 발견됐다는 JTBC 보도에 묻혔다. 박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1차 대국민 담화에서 일부 연설문 표현 등에서 최씨 도움을 받았다며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해명했다.
주말 촛불집회는 10월 29일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달 12일에는 100만명으로 불어났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게 된다”고 했으나 집회 규모는 갈수록 커졌다. 박 대통령은 ‘김병준 총리 내정’에 이어 ‘국회 추천 총리’ 카드까지 꺼냈으나 통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4%까지 주저앉았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에서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검찰이 “대통령이 3명(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범죄사실과 상당부분 공모관계가 있다”고 밝혔으나 꿈쩍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 결과에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라며 반발했다.
검찰 수사에선 드레스덴선언문 등 청와대 문서 180건이 2013년 1월부터 올 4월까지 최씨에게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 회장들을 독대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독려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최씨는 고위공직자 인사까지 좌지우지했고, 박 대통령은 정유라씨의 친구 부모 업체까지 직접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3차 대국민 담화에서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진퇴 일정을 여야 정치권에 맡겼다. 여당의 친박(친박근혜) 지도부는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했으나 야권과 촛불민심에 부닥쳤다. 박 대통령 권한 행사는 9일부로 정지됐고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과 뇌물 혐의는 특검 수사에 넘겨진 상태다.
글=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최순실 격랑 3개월… 결국 朴 탄핵으로 끝나
입력 2016-12-09 18:28